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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는 것의 무력감
오늘 부는 바람은
입력 : 2016-05-23 오전 11:00:25

어릴 때부터 나는 '조심해라'라는 말을 참 많이 들어온 것 같다. 늦은 밤길은 위험하니 '조심'하고 짧은 옷을 입으면 ‘조심’하고 술을 마시면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항상 ‘조심’했다.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기에 내가 조심한다면 최악의 상황은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새벽, 강남 한복판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상가 공용화장실에 숨어 있던 남성이 화장실에 들어온 여성을 살해한 것이다. 가해남성과 피해여성은 처음 보는 사이였다. 가해남성은 여성들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아 불특정 여성을 살해했다며 살해동기를 밝혔다. 그에게 분노의 대상과 분노표출의 대상은 모두 자신보다 약자인 ‘여성’이었다.  

 

CCTV 영상이 뉴스에 공개됐다. 사건 전 남성은 화장실 앞에서 자신이 ‘살해할 만한 여성’을 기다리고 있었고 한 여성이 아무것도 모른 채 화장실로 들어갔다. 이후 화장실에서 나올 수 있었던 사람은 가해남성 한 명 뿐이었다. 여자친구가 오지 않자 찾으러 간 남자친구는 그 참상을 직접 목격했다. 충격에 비틀거리던 그의 모습에 마음이 아렸다. 

 

두 눈으로 직접 영상을 보고나니 실감이 났다. 몸에 오한이 들었다. 번화가 화장실에서도 아무 이유 없이(어쩌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살해돼야 한다니. 순간 피해여성의 모습에서 나와, 내 가족과, 내 친구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피해여성이 나와 같은 23살이기도 했고, 그녀가 살해당한 장소는 누구나 한 번쯤 가본 적 있는 공용 화장실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접한 나와 친구들은 너무 무섭다는 말과 동시에 우리 모두 '조심'해야겠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처음에는 두려움이었다. 그래서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 분노가 치밀었다. 대체 왜 아무 죄 없는 여성을 죽인 거지? 정말 사이코패스인가? 하지만 분노도 잠시, 그 후에 나를 사로잡은 감정은 억울함이었다. 나는 왜 피해여성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오버랩할 수밖에 없었을까. 나는 왜 '어쩔 수 없이' 약자인 것인가. 나는 왜 항상 '조심'해야만 하는 걸까. 이번 사건 같은 경우, 내가‘조심’하는 것이 정말 유의미했을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대체 어느 정도까지 조심해야 하는 걸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아니,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는 한 걸까. 결국 이 감정은 나의 존재 자체에 대한 무력감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조심' 이외에 뭐가 있는 거지. 

 

 

강남역 10번 출구 앞. 사진/조응형

 

 
이제 더 이상 ‘조심’하라는 말이 능사가 아니다. 조심하라는 말을 ‘조심’할 때가 왔다. 보다 근본적인 인식이 필요한 때임을 우리는 너무나도 아픈 방법으로 깨닫고 말았다.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피해자에 대한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메시지를 적은 쪽지와 국화꽃이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가득하다. 나와 같은 감정을 느낀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아 기쁘기도 슬프기도 하다. 오늘 나도 꽃 한 송이와 메시지를 들고 강남역에 가야겠다. 그 날 강남역에 있지 않았더라면 나와 같은 삶을 살고 있을 그녀를 위해. 
 
 
이산후 바람저널리스트 baram.asia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최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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