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3일, 인천에 위치한 청소년인문학도서관 느루에서 세월호 2주기를 맞이한 작은 행사가 열렸다. <청소년과 함께하는 세월호 교실>, 416 연대 미디어 위원회가 세월호 2주기를 기리며 만든 단편 영화 세 편을 감상하고 리본을 만드는 행사였다. 시작 시간은 다섯 시였지만 30분 전에 장소에 도착했다. 영화 상영을 위한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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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도서관에 커다란 스크린과 영사기를 설치했다. 앉아서 투닥거리고 있던 여학생과 남학생은 그 모양을 보더니 벌떡 일어나 스크린 앞에 의자를 놓았다. “이 정도면 되겠지?” 의자에 일일이 쿠션을 놓으며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뿔테 안경을 쓴 앳된 얼굴의 학생은 도서관 문가에 앉아 영화를 보러 오는 참가자의 이름을 적고 약소한 돈을 받았다. 청소년은 1,000원, 어른은 5,000원. 이 비용은 세월호 후원금으로 사용된다.
사진/바람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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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시간인 다섯 시에서 5분이 흐른 시각, 도무지 올 것 같지 않던 참가자들이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직 사람이 충분하게 모이지 않아 행사는 30분가량 미뤄졌다. 이제 날씨가 따듯해져 더 이상 틀지 않는 난로 앞에 모여 앉은 청소년들은 저들끼리 왁자지껄 떠들었다. 세월호에 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세월호, 왜 일어난 거야?” 함께 떠들던 친구들은 잠시 침묵했고 스크린을 점검하고 있던 어른 한 명이 대신 대답했다. “아무도 모르지. 그걸 밝히려고 청문회도 한 거고.” 한 친구가 그 말의 뒤를 이었다. “정부가 알겠지”
오후 5시 20분, 행사가 늦어져 죄송하다며 10분 후 시작하겠다는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모인 청소년들은 서로서로 얼굴을 알고 있는 듯 보였다. 어른들이 나누어준 노란색 풍선을 가지고 후후 불기 시작했다. 웃는 얼굴이 해맑았다.
오후 5시 35분, 행사가 시작됐다. 동그란 안경을 쓴 청년 한 명이 앞에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2년이 지났습니다. … 가라앉은 진실을 인양하기 위해 싸우는 유경근 416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님은 단 한마디의 부탁을 합니다. 싸워 달라거나 유가족을 지지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잊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길에서 노란 리본을 만나는 것, 그것이 가장 큰 힘이 된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잊지 않기 위해 모였습니다. 주말의 휴식을 뒤로 한 채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세월호 2주기를 기억하는 영화 상영을 시작하겠습니다.”
사진/바람아시아
416 연대 미디어 위원회에 모인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왜곡 보도를 일삼는 언론을 대신하여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일곱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이 영화를 전국적으로 상영하자는 캠페인이 일었고, 느루에서는 그 중에서도 <도둑>, <교실>, <선언>을 차례대로 상영했다. 총 상영 시간은 90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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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자리에 모인 청소년 8명, 어른 6명이 영화를 감상했다. 영화를 보는 그들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어휴…” 한숨이 터져 나왔고 욕도 흘러나왔다. 영화 <도둑> 중에 유가족 중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팽목항에서 기자라는 사람이 학생들 면포를 걷어내고 사진을 찍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울부짖었다. 이 행사를 글로 남겨보겠다고 사진기를 곁에 끌어 앉고 있던 내가 부끄러워질 정도의 울음이었다.
영화 속에서 한 유가족은 자기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며 꼭 진상규명 해달라고 부탁했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훌쩍거림이 들려왔다.
영화에 집중한 와중에도 묘한 공간의 분리가 느껴졌다. 작은 도서관은 세월호 영화를 보러 온 학생과 공부에 집중하는 학생들로 나누어져 있었다. 도서관에는 학업을 위해 마련된 세미나실이 있었고, 그 곳에서 몇 명의 학생이 공부 중이었다. 그들은 영화가 시작되자 세미나실 커튼을 걷고 그 자리에서 몇 분간 영화를 바라봤다. 도서관 중앙은 껌껌했지만 그들이 있는 세미나실은 밝았다. 잠시 눈이 부셨다. 하지만 직접 밖으로 나와 비치된 의자에 앉지는 않았다. 커튼은 다시 내려졌다.
다른 세미나실에서 공부하던 두 명의 학생은 소음 때문인지 떠났다. 영화 속 단원고 졸업생은 세월호를 기억하자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쩐지 다른 온도였다. 책을 챙겨 떠난 어린 학생의 가방에도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마지막 영화 <선언>이 시작되었다. 세월호를 위해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사람의 인터뷰가 나왔다. 그들은 세월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유가족이 아닌 사람이었다. 자원봉사를 자처하지 않고 여기서 영화만 보고 있는 이들도 영화 속 그 사람과 온도가 다를지도 모른다.
오후 7시 15분, 영화 세 편이 모두 끝났다. 마지막 영화의 크레딧이 유난히 길었다. 끝없이 누군가의 이름이 적힌 자막이 흘러나왔다. 416 연대 미디어 위원회의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돈을 받지 않고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긴 크레딧에 이름이 적힌 사람들은 이 작품에 미리 후원을 해준 사람들이다. 그 소중한 이름이 다 흘러갈 때까지 도서관 불은 켜지지 않았다.
불이 켜지고 어수선한 박수소리가 흘러나왔다. 박수를 쳐도 되나 어리둥절한 얼굴들이었다. 어린 청년이 다시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세월호 영화가 끝났습니다. 잠시 마음을 추스르고 세월호 리본 만들기 행사를 진행하겠습니다. 모두 참여해주시기 바랍니다.”
오후 7시 25분, 참가자들은 책상에 옹기종기 모여 리본을 만들었다. 작은 리본으로는 세월호 열쇠고리를 만들고, 긴 리본에는 본인이 세월호와 관련해 하고 싶은 말을 적기로 했다. ‘그네의 사라진 7시간을 밝혀라’ ‘진실을 인양하라, 대한민국을 인양하라’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 돼’ 다양한 글귀가 적혔다. 한 청소년은 ‘7시간’에 유난히 집중하며 리본 여기저기에 7시간을 밝혀야 한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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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너네도 가져갈래?” “와! 주세요. 주세요. 감사합니다.” 수많은 리본이 만들어졌다. 세미나실에서 늦은 시간까지 공부를 하던 학생들에게도 세월호 리본을 나누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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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가 진행 된 2시간 동안 각자 다른 온도가 존재했다. 세월호 영화를 보러 오고 90분 내내 자리해준 사람들, 세미나실에서 공부를 계속 하던 학생들, 영화 속에 자원봉사를 자처하던 사람들. 영화를 보다가 중간에 나간 학생들. 소리가 시끄러웠는지 다른 공부할 곳을 찾아 나간 친구들.
사람들은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한 행사에 참여하고, 가방에 리본을 달고 다니고, 현장에 나가서 몇 시간 동안 서서 자원봉사를 하기도 한다. 우리는 각자 다른 온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다름’을 욕할 수 있을까? 기억하고 있다는 그 작은 온기 하나만으로도, 그것만으로도, 어쩌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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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현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