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여읜다는 것은 한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특별하게 나쁜 기억이 없다면 아마도 아버지란 이름은 끝없는 갈망의 대상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기엔 너무 어린 나이, 그래서 그저 박제된 이미지로만 남아버린 한 사내에 대해 어쩌면 자식으로서 그를 어떻게든 기억해내야 한다는 부채의식마저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던 중 생각지도 않게 아버지의 흔적을 발견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천군만마라도 얻은 듯 간신히 발견한 흔적을 붙들고서 끝끝내 '그의 이야기'를 복원해내고자 고군분투하게 되지 않을까.

전직 기자인 저자 김창희는 어느 날 집안 구석에서 아홉 살 때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남긴 필름 꾸러미를 발견한다. 남의 이야기를 좇아 취재수첩을 열고 방방곡곡 돌아다녔던 저자가 지난 50년 동안 마음 한 켠에 묻고 산 아버지의 흔적과 대면하는 순간이다. 꾸러미가 담겨 있던 상자에는 아버지가 직접 찍은 사진은 물론 빼곡하게 적힌 기록들도 함께 가지런히 모여 있다. 빛 바랜 기록을 보는 순간 오랫동안 몸에 익은 직업의식이 은근슬쩍 발동하기 시작한다. 책 '아버지를 찾아서'는 그렇게 탄생했다.
시작은 '그의 아버지'였지만, 책에는 '그의 아버지 이상'의 의미가 담겼다. 아버지의 인생사를 파헤치다보니 어느새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까지 줄줄이 엮여 딸려왔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버지가 남긴 기록물을 보기좋게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기록물 속에 희미하게 반짝이는 단서들을 붙잡은 채 직접 발벗고 현장 취재에 나섰다. 그렇게 해서 아버지가 만났던 사람들, 아버지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여기 책 한 권에 오롯이 실렸다. 자칫 영영 묻힐 뻔한 기억들이 끈기의 힘으로 되살아난 셈이다.
저자는 아버지가 가장 행복한 시기를 보냈을 것으로 추정되는 통영에서부터 계룡산, 평양 경상골, 서울 북아현동 시절까지 샅샅이 훑는다. 소년 시절 결핵에 걸려 평생을 병마의 그림자와 함께 하다 짧은 인생을 마쳤지만 주위를 둘러보는 삶을 산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다행히 많았다. 저자의 취재에 의해 얽히고 설켜 있던 아버지의 소소한 개인사는 그가 살았던 시대상과 맞물리며 그의 아들이 아닌 뭇 독자에게까지 결코 작지 않은 울림을 선사한다.
인상적인 것은 그의 주위에는 늘 선한 이웃이 있었고, 또 그 자신도 선한 이웃의 소임을 다했다는 사실이다. 이 세밀한 기록들은 결국 우리가 잃어가는 것이 비단 아버지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은연 중에 피력하는 듯하다. 이로써 사적인 동기에서 출발한 이 이야기는 저자의 우려(?)와는 달리 그저 남의 아버지 이야기로만 그치지 않고 제 의미를 찾게 된다. 제법 방대한 자료가 담겨 있지만 세심한 감수성의 독자라면 한국 근현대사의 격랑 속에서도 오롯이 자기 몫을 다하고자 노력했던 시민 누구나가 이 이야기 속 '아버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김나볏 기자 freenb@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