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대법원이 24일 판결한 'ELS 사건'의 판단 기준은 은행 등이 주식을 매도한 시간대와 수량, 매도호가, 매도관여율, 시세조종 유인 동기 등이다. 이 점에서 이날 판결된 도이치은행 사건과 비엔피파리바사건은 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이 대법원의 설명이다.
자본시장법이 금지하는 시세조종에 해당하면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는 법리는 동일하게 적용됐지만 도이치은행은 이런 기준을 모두 충족했다.
우선 시세조종행위 동기에 대해 대법원은 "만기기준일에 상환조건 성취가 무산될 경우 도이치은행은 해당 ELS와 관련해 확정적으로 원리금 상환부담이 절반 정도 감소하게 됐다"며 "그만큼 만기기준일에 상환조건의 성취를 무산시킬 동기가 컸다"고 지적했다.
매도 형태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기준일 당일 접속매매시간대에는 주식 가격이 올라 상환기준가격 부근에 있었던 오후에 집중적으로 주식을 매도했고, 단일가매매시간대에는 예상체결가격이 상환기준가격을 근소하게 넘어서는 시점마다 반복적으로 대량으로 주식을 매도했다"며 시세조종행위를 인정했다.
사건관여율 등도 "사건 기준일 당일 종가시간대에 해당 주식의 도이치은행 매도관여율은 46.9%였고, 직전가 대비 저가주문 비율은 46%였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도이치은행이 이런 기준을 모두 충족하기 때문에 설령 델타값에 맞추기 위한 목적이 개재되었다고 하더라도 자본시장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시세조종 등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이날 시세조종행위를 인정하지 않은 비엔피파리바은행에 대해 대법원은 주식매도 형태 자체로 판단해볼 때 시세조종행위의 동기를 찾아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비엔피파리바는 기준일 직전 2일간 델타값에 따라 주식 60만주를 매수했다. 그러나 주식매도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전체 거래량의 10% 범위 내에서 거래량가중평균가격에 맞추어 매도하는 이른바 ‘10% + VWAP' 방식을 선택했다. 실제 매도가격도 평균 매도가격 이상이었으며, 거래량 역시 한국거래소 가이드라인이 정한 범위 안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대법원 설명이다.
지난 10일 대법원은 같은 사안으로 투자자들이 비엔피파리바를 상대로 낸 소송 상고심에서 역시 시세조종행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우선 상환조건 성취가 1회 조기상환기준일에 무산됐는데 만기를 포함해 5회 남은 이후 상환기일에 조건이 성취되는 경우 원리금 상환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에 굳이 첫 상환기준일에 조건성취를 무산시킬 동기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또 당시 비엔피파리바는 기준일 직전 3일간 델타값에 따라 대량으로 주식을 매도했는데, 대법원은 사건 기준일 시초가가 상환기준가격 보다 높게 결정 됐고 전날 종가 보다 높은 가격이었던 점, 당일 주가 상승으로ELS의 상환조건이 성취될 가능성이 있어 델타값에 따라 주식을 매도할 필요가 있었다고 봤다.
대법원은 특히 사건 기준일 정오 이전 비엔피파리바가 주가 상승을 예상해 직전체결가보다 높은 호가를 제시했다가 주가가 상승하지 않자 정오를 지나 대부분 물량을 직전체결가의 2호가 이내로 나눠 매도한 점, 매도 주문수량이 유비에스 은행보다 2배 이상 많았기 때문에 더 폭넓은 호가의 주문이 필요했던 점 등을 고려할 때 비엔피파리바가 접속매매시간대에 한 매도 주문은 허수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또 비엔피파리바가 사건 기준일 14:57:03부터 14:58:04까지 3회에 걸쳐 20만 주씩 합계 60만 주에 대해 시장가로 한 매도 주문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적법하다고 인정할 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우선 당일 장 종료 전에 상당한 수량을 매도할 필요가 있었던 점, 시장가 주문은 지정가 주문보다 우선해 계약 체결을 하기 위한 주문으로, 다른 증권회사에서도 많이 사용하고 있는 주문인 점 등에 비춰보면, 결국 가격 하락을 목적으로 한 주문으로 보기 어렵고 델타헤지를 위한 거래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의 이같은 판단 기준은 하급심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현재 서울고등법원에는 다섯건의 ELS 소송이 계류 중이다.
도이치은행. 사진/구글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