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헌법재판소에 의한 사전적 위헌법률심사제도인 '추상적 규범통제' 도입을 두고 법조계와 학계의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지난 1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주최로 열린 초청 토론회에서 '추상적 규범통제' 도입 필요성을 정면으로 주장했다.
그는 이날 "우리 사회에서 소모적 논쟁과 갈등으로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추상적 규범통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박 소장이 법원의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인정해야 한다는 이른바 '재판소원' 도입이나 헌법재판관 3명을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자를 임명하도록 한 헌법 조항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한 예는 과거에도 있었다.
그러나 '추상적 규범통제'는 사법작용이 아닌 입법작용에 대한 견제와 맞물린 문제인데다가 헌법개정을 요하는 사항으로, 박 소장이 이를 공식 언급하기는 처음이다.
'추상적 규범통제'란 국민의 기본권 침해 등 구체적 사건의 발생과 관계없이 법률의 위헌성이 문제가 되면 시행 전이라도 헌법재판소가 위헌심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원칙적으로 청구권자의 청구가 있어야 한다.
대표적 '추상적 규범통제' 국가인 프랑스는, 정부조직법에 대해 공포 전 헌법위원회가 위헌여부를 심사한다. 기타 법률은 대통령, 총리, 상·하원 의장 또는 60명 이상의 상·하원의원이 제청한 경우 헌법위원회가 위헌여부를 심사한다.
우리나라 헌법은 111조에서 '법원의 제청에 의한 법률의 위헌여부 심판'을 헌법재판소 관장사항으로 하고 있어 법률의 위헌성이 재판의 전제가 될 때에만 위헌심사를 하게 하는 '구체적 규범통제'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 법조계나 학계에서는 '추상적 규범통제' 도입을 긍정하는 의견이 다수설로 보인다. 위헌성이 있는 법률이 집행돼 기본권 침해 등 법적 안정성이 무너진 다음에 위헌심사를 하기 보다는 법 시행 전 위헌성을 제거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주장이다. 분쟁을 조기에 종식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추상적 규범통제' 도입 전, 헌법재판소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와 권력 비대화에 대한 안전장치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국회 내에서 상대 당의 입법작용에 대한 견제로 남용될 가능성도 문제다.
이재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사법위원회 위원장은 "'추상적 규범통제' 도입에 대해 기본적으로 찬성한다"면서도 "입법권이 제약될 것인 만큼 헌법재판소가 정치적으로 독립되어야 하고 재판관들도 국회에서 선출하는 등 민주적 정당성이 먼저 확보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렇지 않으면 헌법재판소가 입법권을 정치적 고려에 의해 좌지우지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헌 '시민과 함께 하는 변호사들(시변)' 공동대표는 "'추상적 규범통제' 도입은 국민의 합의가 우선"이라면서 "입법논쟁이 헌법논쟁으로 번지면서 '헌법논쟁의 일상화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 대표는 "국회 입법 작용에는 반대자가 언제든 있을 수 있다"며 “국회 내 각 당들이 서로의 입법 작용을 반대하기 위해 '추상적 규범통제'를 남용할 소지가 있어 오히려 갈등이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계했다.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을 역임한 황도수 건국대 법과대 교수는 "프랑스 등에서 '추상적 규범통제'를 채택한 것은 분쟁의 조기종결 내지 예방 차원에서 실익이 있기 때문"이라며 "다만, 헌법재판소가 본래 기능을 충실히 하고 청구 요건을 합리적으로 조율하는 것이 도입의 전제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헌법연구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입법작용은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 권한이기 때문에 함부로 통제해서는 안 되고 정치적 목적에 의한 남소 우려까지 있다"며 "헌법재판소가 '추상적 규범통제'에 까지 나서는 것은 본래적 사법기능을 뛰어넘는 것"이라고 반대했다.
그는 "최근 '추상적 규범통제'가 거론되고 있는 것은 국회의 입법기능에 문제가 있다는 점에서 논의가 출발하고 있다"며 "원칙적으로는 구체적 규범통제가 맞고 예외적으로 '추상적 규범통제'를 채택하는 것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지난 18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초청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헌법재판소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