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크게 작게 작게
페이스북 트윗터
술 권하는 사회
입력 : 2016-03-15 오후 4:19:53
‘내게 술을 권하는 것은 홧증도 아니고 하이칼라도 아니오. 이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알았오? 팔자가 좋아서 조선에 태어났지, 딴 나라에 났더면 술이나 얻어먹을 수 있나...’
 
현진건의 단편소설 『술 권하는 사회』에서 남편은 늘 술에 취해 귀가한다. 그에게 술을 권하는 것은 조선사회이다. 사회가 술을 권한다는 자조적인 그의 말은 알코올중독자의 개인적 변명으로 보이지 않는다. 일제강점기였던 조선사회에서 지식인이 맨 정신으로 살기에는 지독히도 답답했을 것이다. 그는 취해있기를 선택하여 먼저 술잔을 내밀었다.
 
현재 대한민국 사회도 술을 권한다. 먼저 술잔을 내밀지 않아도 술잔에 ‘원활한 사회생활’을 담아 건넨다. 특히 술잔은 사회에 혹은 특정 공동체에 처음 들어온 사람을 향한다. 술잔은 ‘너’가 ‘우리’가 되기 위한 입장료이다. 이 입장료가 버거웠지만 받아야 했던 사람들이 있다.
 
익명, C대학교 15학번
-술자리에서 힘드셨던 적이 있으셨나요?
 
대학에 입학하고 처음 중앙동아리에 가입했어요. 동아리 첫 술자리가 있어서 갔는데, 사실 제가 술을 잘 못하거든요. 그래도 다 먹는 분위기니까 한두 잔 받아먹었어요. 처음인데 빼기 좀 그렇잖아요. 그런데 계속 반복되다보니까 도저히 못 먹겠더라고요. 아 근데 한 선배님이 술을 따라주셨는데 제가 못 먹겠어서 뺐어요. 그래서 맞았어요.
 
-받은 술을 먹지 않아서 맞으셨다고요?
 
네. 소주잔을 얼굴에 던지시더라고요. 다행이 잔이 깨지지는 않았는데 머리에 멍들었죠. 엄청 놀랐고...저는 다른 선배가 병원에 데려다 주셨어요. 나중에 들어보니까 분위기 안 좋아져서 바로 술자리 파토 났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지 몰랐네요...그 동아리는 계속 다니시나요?
 
아니요 그날 이후로 한 번도 안 나갔어요. 그 선배 아직도 피해 다니죠,
 
익명, 22살 은행직원
-신입사원이신데, 회사생활은 어떠세요?
 
월요일(2월 29일)에 사직서 내요. 처음 입사한 회사고 아직 다닌지 6개월밖에 안됐지만, 지금까지의 6개월을 다시 하라고 하면 못 할거 같아서 퇴사해요. 뭐 복합적인 이유죠. 한 단어로 하면 ‘힘들다.’이고.
 
-어떤게 가장 힘드셨어요?
 
은근하게 왕따 시키는 거나 업무 관련된 것도 많이 스트레스 받았어요. 술자리도요. 저는 술을 잘 먹는 편이에요. 근데 처음 회식 때 와.. 아직도 기억나요. 주도 아세요? 팀원이 7명 정도 되는데 한명한명한테 가서 내 잔으로 술 드리고 저도 그걸로 받아 먹는 거에요. 내 잔 하나로요. 내가 따라드려도 그 인간들은 먹지도 않아요.
 
그래놓고 내가 안 먹으면 왜 자기가 주는건 안 먹냐고 엄청 뭐라고 해요. 소주 7잔 연속으로 마셨어요. 머리가 핑 돌더라고요. 나가서 토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엄청 찝찝해요 잔에 립스틱 자국, 입술자국 다 묻어 있잖아요. 근데 웃긴 게 닦으려고 하면 닦지 말라 그러고.. 와 간접키스도 아니고 진짜. 본인들도 못 먹으면서 왜 권하는지 모르겠어요.
 
 
대한민국에서 술자리는 글자 그대로 술을 먹는 자리가 아닌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삼육대학교 보건관리학과 천성수교수는 논문에서 ‘공동체가 중요시되는 사회일수록 술자리의 참석이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폭탄주, 돌림주, 사발식 등의 음주문화가 공동체의 결속력을 강화시킨다고 믿는다.’라고 언급했다. 공동체의 결속력을 위해 우리사회는 잔을 권한다. 술잔에 담긴 술에는 원활한 인간관계, 승진, 친목, 예의 등 첨가물이 녹아 있어서 잔을 거부하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잔을 권할 때는 보통 상대방의 주량 차이를 전부 고려하지 못한다. 따라서 술을 과하게 권하게 되고, 이는 사회적인 문제로 이어진다. 위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알코올관련 문제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고위험 음주자 비율이 2005년 14.9%에서 2009년에는 17.1%로 증가하였고, 인구 10만 명당 음주운전 사고 발생율도 2005년 54.79에서 2009년 57.86으로 증가하였다. 통계 밖의 세상에선 대학에 갓 입학한 학생이 과음으로 사망했고, 신입사원들은 술 몰래 버리는 법을 검색한다.
 
사진/바람아시아
 
술로 인한 사회적 문제들로 인해 음주문화 개선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천성수 교수는 ‘음주문화를 개선하는 것은 술을 마시는 행위나 주도의 문제를 뛰어넘어, 바뀌어야 할 사회생활을 의미한다.’고 언급하였다.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시하는 사회 분위기를 개선해야 바람직한 음주문화가 정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술에 관대한 우리사회의 문화적 특성도 음주문화 개선에 있어서 고려해야 할 점이다.
 
대한민국 사회는 이제 취하지 않고서도 살아갈 수 있다. 암울한 시대가 답답해서 술을 마시는 지식인은 줄었다. 하지만 술을 강요받는 사람은 늘었다. 사회가 주는 잔을 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술 권하는 사회』에서 아내는 말한다.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남경지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윤다혜 기자


- 경제전문 멀티미디어 뉴스통신 뉴스토마토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