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등 일상예술창작센터 대표. 사진/임효정기자
정성들여 직접 만든 제품을 가지고 나와 왁자지껄 좌판에 펼친다. 홍대 앞을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봤을 광경이다. 매주 토요일이면 홍대앞 놀이터에서는 예술가들 자신이 만든 수공예품을 판매하는 예술장터가 열린다. '프리마켓(Free Market)'이다. 프리마켓은 사용한 물건을 판매하는 벼룩시장인 플리마켓(Flea Market)과는 구별되며, 시민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을 지향한다. 홍대거리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한 프리마켓은 지난 2002년 월드컵 기간에 처음 열린 이후 올해로 15년째를 맞았다. 오랜 시간 이어져오며 홍대라는 지역의 상징을 넘어 전국적으로 프리마켓이란 문화·예술 공간을 확산시키는 데 일조했다. 국내 프리마켓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홍대앞 프리마켓'을 만든 김영등 일상예술창작센터 대표를 만나봤다.
일상예술창작센터는 시민과 창작자가 주체가 되는 문화사회를 조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한·일 월드컵 열기가 뜨거웠던 2002년 6월 열린 '홍대앞 예술시장 프리마켓'에서 시작됐다. 프리마켓은 홍대신촌문화포럼의 일환으로 당시 사무국장으로 일하던 김영등 대표가 기획해 열렸다. 월드컵 이후 프리마켓도 해산되는 분위기가 일자 김 대표는 이듬해인 2003년 5월 일상예술창작센터라는 비영리 단체를 만들고 프리마켓을 되살렸다.
노점상으로 인식되던 '프리마켓', 홍대 상징으로
초창기 일상예술창작센터의 가장 큰 과제는 프리마켓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는 것이었다. 프리마켓을 중고품을 사고파는 상업적인 공간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같은 부정적 시선 때문에 우여곡절도 많았다.
"인식을 바꾸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었죠. 어린이들이 뛰어노는 놀이터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노점상이냐고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습니다."
노력은 계속됐다. 창작자들의 활동으로 시민과 소통할 수 있는 문화가 퍼지기 시작했고 홍대앞 프리마켓에 대한 인식도 점차 바뀌었다.
홍대앞 예술시장 프리마켓 모습. 사진/일상예술창작센터
홍대앞 프리마켓은 3월부터 11월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열린다. 창작자들이 손수 만든 공예품 판매는 물론 다양한 공연까지 어우러지면서 축제의 장으로 자리 잡았다. 센터는 지난 2012년 5월 홍대에 이어 명동에도 '명랑시장' 프리마켓을 오픈했다. 명랑시장은 금요일 오후 5시부터 9시까지 운영하며, 퇴근길 직장인들과의 소통공간으로 변모했다.
홍대와 명동가 연이어 성공모델로 자리하면서 프리마켓의 붐은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홍대에서 시작해 현재 전국 각지에서 뜻이 맞는 예술가들이 모여 프리마켓을 열고 있다. 김영등 대표는 "처음에는 낯선 행사로 인식되던 것이 일상적 문화행사로 인식이 바뀌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며 "문화인식을 바꿨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마을에 자리한 '새끼'…공동체 복원
일상예술창작센터는 '마을'로도 눈을 돌렸다. 그러면서 탄생한 것이 생활창작공간 '새끼'다. 프리마켓이 예술가와 시민들의 소통공간이었다면 새끼는 예술가와 주민들 간의 소통공간이다. 센터는 2011년 마을공방을 만들어 연남동 주민들에게 문화예술 활동을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연남동 주택가에 마련된 공방에서는 목공, 바느질 등 다양한 강좌가 열린다.
마을사업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마을공방에서 만들어진 작품들과 연남동에 위치한 여러 골목 공방들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을 판매하는 '연남동 따뜻한 남쪽 시장'도 매년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2013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5년째를 맞은 마을공동체 사업이다. 연남동 길공원 일대에서 봄, 가을마다 열리는 마을시장은 주민들에게 삶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한다.
"마을공방으로 먼저 주민들에게 다가갔기 때문에 프리마켓이 초창기 겪었던 어려움을 반복하지 않았습니다. 순조롭게 시장을 열게 됐고, 인근 주민들도 참여하는 대규모 마을시장으로 자리를 잡았어요."
지역민들의 호응이 이어지면서 마을시장은 2013년 마포구 살기좋은마을만들기 우수사례로 선정되기도 했다.
창작자 작품의 상시 판매 공간 'KEY'
일상예술창작센터는 프리마켓에 참여하는 창작자들의 제품을 상시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생활창작가게 'KEY'다. KEY는 지난 2011년 7월에 오픈한 창작품 대안유통 공간으로, 사회적기업 인증 이후 새로운 사업모델 개발의 일환으로 탄생했다. 창작품 판매가 이뤄지는 공간인 동시에 1인 창작자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신진 아티스트를 발굴하는 장이기도 하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위치한 생활창작가게 'KEY'. 사진/일상예술창작센터
프리마켓을 시발점으로 이뤄진 예술가들의 네트워크는 점차 확장되고 있다. 일상예술창작센터는 12년간의 활동 성과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2014년 '서울국제핸드메이드페어'를 개최했다. 프리마켓이 1인 창작자들을 대상으로 했다면, 박람회는 1인 창작자부터 사회적경제 영역의 단체들까지 아우르는 대규모 행사로 격상됐다. 박람회 개최 첫 해 500여명의 개인과 단체가 참여했으며, 이듬해에는 700여개로 부스가 늘었다. 올해는 오는 6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제3회 박람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과제는 '안정적인 수익'
기업이 운영되기 위한 필수조건 가운데 하나가 '안정적인 수익'이다. 센터도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센터는 지난 2010년 5월 고용노동부로부터 사회적기업으로 인증 받았다. 이전까지는 자원활동으로 운영이 이뤄지면서 2~3명 있는 직원들의 급여조차 지급하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2010년 사회적기업으로 인증 받으면서 2013년까지 운영비 등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2014년 지원이 끝나면서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수익에 대한 고민은 여전하다. 프리마켓과 마을공동체사업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때문에 유통 네트워크인 KEY와 박람회 등을 통해 수익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생활창작가게의 경우 현재 오프라인 플랫폼을 온라인에 접목할 계획도 있다. 김영등 대표는 "안정적인 수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온라인 쇼핑몰을 고민하고 있다"며 "현재 오프라인상에서 생활창작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것을 온라인 플랫폼으로 확장해 채널을 늘릴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프리마켓, 마을시장 등 다양한 문화행사에 대한 기획 경험을 바탕으로 문화행사나 디자인 기획을 의뢰 받아 진행하는 것 역시 수익을 얻기 위한 수단 가운데 하나다.
김영등 대표는 문화 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소외되지 않는 사회가 조성되길 바라는 마음도 전했다. 그는 "문화·예술활동 자체가 돈 되는 사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며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분야인 만큼 발전된 사회라면 이에 대한 지원 등이 뒤따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임효정 기자 emy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