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 계좌이동제 시행에 맞춰 시중은행들이 고객의 주거래은행 잡기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은행권 경쟁력 강화를 위해 추진한 계좌이동제가 업계 간 과다경쟁을 유발해 은행의 수익성을 악화시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12일 은행권에 따르면 KEB하나은행, 신한은행, 국민은행, 농협은행, 우리은행, 기업은행 등이 이달 말 계좌이동제 시행을 대비해 수수료 무료, 우대금리 등 유사한 혜택을 앞세워 출혈경쟁에 나서고 있다.
실제로 KEB하나은행은 지난 1일 행복노하우 주거래 우대통장을 출시했다. 이 통장은 오는 30일 시행되는 계좌이동제 1단계에 대비해 출시한 상품이다. 대표적인 혜택으로는 최대 연1.5% 우대금리 제공, 은행수수료가 면제 등이 포함됐다.
하지만 이 상품은 앞서 출시된 신한은행의 '신한 주거래 우대 통장'과 혜택이 비슷하다. 이 통장도 인터넷, 폰, 모바일 뱅킹 이체 수수료 면제와 평균 잔액 요건 만족 시 최대 연 1.75% 우대금리를 제공한다.
이밖에 국민은행(KB국민ONE라이프 컬렉션), 농협은행(NH 주거래우대패키지), 우리은행(우리웰리치 주거래패키지 시리즈), 기업은행(IBK평생한가족통장) 등도 유사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각 은행들이 계좌이동제를 대비해 출시한 상품이 비슷한 혜택을 포함하고 있는 데는 과도한 '출혈경쟁' 탓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은행의 수익성이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기존 고객들을 놓치지 않겠다는 업계의 방어적인 전략인 셈이다.
계좌이동제는 금융위가 지난 2013년 11월 '금융업 경쟁력 강화방안'의 하나다. 이 제도는 고객이 보다 간편하게 주거래계좌를 갈아탈 수 있도록 해 서비스 품질 강화를 꾀하겠다는 계획에 따라 추진됐다.
우선 계좌이동제 1단계가 실시되면 고객들은 금융결제원의 자동이체 통합관리 시스템인 ‘페이인포(www.payinfo.or.kr)’를 통해 통신사요금·카드요금·아파트관리비 등의 납부 계좌를 주거래은행 계좌로 손쉽게 바꿀 수 있다. 기존에 주거래은행 교체 시 번거롭던 납부계좌를 한 번에 이동할 수 있게된 것이다.
이 제도 실시에 고객들은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 4월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서울시에 거주하는 만 25~59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계좌이동제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51.2%가 주거래계좌를 바꾼 경험이 있거나 바꿀 의향이 있는 것으로 응답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자동이체 등록이 가능한 수시입출금식 예금 잔액은 419조원에 달한다. 앞선 조사에 따라 절반 이상의 고객이 주거래 은행을 교체하면 단순 계산으로 200조원 이상의 예금 주인이 바뀌게 된다.
금융당국의 취지와는 달리 최근 국내은행들의 실적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올 2분기 국내은행의 영업실적 자료에 따르면 이 기간 국내은행의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대비 8.7% 감소한 2조2000억원에 불과했다.
이 기간 국내은행의 총자산순이익률(ROA)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09%포인트 하락한 0.42%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자기자본순이익률(ROE)도 5.51%로 전년 대비 1.14%포인트 감소했다.
하영구 전국은행연합회장도 국내은행의 과다경쟁이 수익성을 악화시킨다고 지적했다.
페루 리마에서 열리는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에 참석한 하 회장은 지난 8일(현지시간) 기자들과의 자리에서 "지난 2004년부터 2006년까지 국내 은행의 총자산이익률(ROA)은 0.8~1% 정도였지만 올해는 0.3~0.4%대로 하락했다"며 "이는 과다경쟁의 폐해로 전체 파이가 한정된 상태에서 점유율을 높이려면 가격을 내려 서로의 영역을 뺐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은행업계 한 관계자도 "기준금리가 역대 최저로 하락해 예대마진이 대폭 축소된 지금은 결제성예금 확보가 수익성과 직결될 수밖에 없어 은행들은 방어적인 측면에서라도 계좌이동제에 대처해야만 하는 실정"이라며 "한정된 국내시장에서 은행 간 경쟁이 심화되면 은행업계 모두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이어 그는 "이처럼 은행의 경쟁 과열은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어 최악의 상황에서는 기업투자 등 은행의 본 기능을 저해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시중은행이 최근 출시한 주거래 은행 우대 통장. 표/각사
김형석 기자 khs8404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