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환규 의료희망연구소장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적인 제약회사 화이자는 1849년 독일계 이민자였던 찰스 화이자와 사촌인 찰스 에하트가 뉴욕 브루클린의 한 벽돌공장에서 '찰스화이자 앤 컴퍼니'라는 이름의 회사를 설립함으로써 시작됐다. 처음 그들은 사탕맛이 나는 구충제를 만들어 큰 돈을 벌었다. 1930년대 비타민을 주로 생산하던 화이자는 1940년대 들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정부의 요청에 의해 '기적의 약'이라고 불리던 페니실린을 대량 생산함으로써 획기적인 발전의 전기를 맞게 되었고 이를 발판으로 1950년 테라마이신(항생제), 1967년 바이브라마이신(광범위 항생제), 1980년 펠덴(소염제), 1986년 유나신(주사형 항생제), 1992년 졸로프트(항우울제)과 노바스크(고혈압 치료제), 1995년 카듀라(전립선비대증 치료제), 1997년 리피토(고지혈증 치료제), 1998년 비아그라(발기부전 치료제) 등 굵직한 블록버스터급 신약 개발의 성공을 알리며 세계 제약시장을 주도해왔다.
2014년 화이자의 연매출은 약 60조원에 달하고 리피토 등 신약의 특허가 만료됨에 따라 순익이 절반 이상 크게 줄었음에도 약 10조원의 순익을 내고 있다. 그런데 화이자가 현재의 세계적 제약사로 발돋움 하기까지 역사를 살펴보면 적극적인 기업의 인수합병(M&A)을 통해 성장해 왔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화이자는 2000년 워너 램버트 제약회사를 약 870억 달러(100조원)에 인수했고 2002년에는 파마시아를 600억 달러(69조원)에 인수했으며 2009년 와이어스 제약을 680억 달러(78조원)에 인수했다. 2010년에도 화이자는 킹제약을 36억 달러에 인수했고 금년 초인 2015년 2월에도 호스피라를 152억 달러(17조원)에 인수했다. 이렇게 지금까지 화이자가 인수합병한 회사는 총 17개에 이르는데 화이자가 인수합병한 회사들은 또 다른 회사들과 이미 합병된 회사들이어서 이전의 합병까지 합치면 총 41개 제약기업이 현재 화이자에 녹아있는 셈이다. 화이자는 지난 해 1천억 달러에 영국의 대표 제약기업인 아스트라 제네카에 대한 인수합병을 시도하였으나 불발되기도 했다.
활발한 인수합병을 통해 제약회사의 규모를 키우는 것은 비단 화이자만의 일이 아니다. 독일의 다국적 제약사인 머크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30개 회사가 합병되어 만들어진 것이고, 현재 세계 1위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스위스의 노바티스도 30개 회사가 합병되어 만들어졌다. 사노피는 현재까지 28개, 아스트라제네카는 20개의 회사가 합병된 결과물이다. 이같이 세계적인 제약회사의 대열에 오른 제약사들은 거의 모두 활발한 인수합병을 거쳐 만들어졌다. 이렇게 세계 제약시장을 주름잡는 소위 빅파마(Big Pharma)들 사이에서는 인수합병이 매우 활발히 일어나는 이유에는 파이프라인 확장(생산분야 확대), 특허 및 인재와 기술의 흡수를 통한 기업의 노하우 확보, 브랜드 파워 확장, 영업망 확대, R&D부담 절감 등의 다양한 목적이 있다. 특히 신약의 허가 기준이 까다로와지면서 갈수록 R&D의 생산성이 악화되어 신약개발을 위한 R&D 부담의 절감이 큰 몫을 하고 있다. 한 마디로 제약업계에서 국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장단점을 가진 제약회사들의 M&A가 필수적이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지금 빅파마들은 ‘규모의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의 제약업계의 M&A 현황을 살펴보자. 국내의 대표적인 제약회사인 유한양행, 녹십자, 동아제약, 대웅제약, 그리고 한미약품의 발전사에서 M&A 역사를 찾기는 매우 힘들다. 녹십자는 녹우제약, 상아제약, 경남제약, 이노셀 등 4차례에 걸쳐 인수합병을 시도했으나 이중 녹우제약과 경남제약 등 2개 제약사는 시세차익을 내고 되팔았다. 한미약품 역시 2000년 동신제약을 인수했으나 3년 후 시세차익을 내고 되판 것 외엔 인수합병의 기록이 없다. 국내 매출 1위 기업인 유한양행은 이렇다 할 M&A가 전무하다. 동아제약은 2010년 삼천리제약을 인수한 것이 고작이고 대웅제약 역시 2015년 한올바이오파마를 인수한 것이 전부다. 활발한 M&A를 펼치고 있는 세계적 제약기업들과 달리 M&A에 소극적인 우리나라 제약기업들의 모습은 대조적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제약사들은 대형 다국적 제약사들이 신약개발에 대한 R&D부담을 크게 느끼는 반면 복제약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국내 제약사들의 입장에서 파이프라인이 중복되는 경우가 많아 굳이 덩치를 키울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복제약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이스라엘의 대표적 제약회사인 테바(TEVA)를 보면 그 답변이 적절한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1976년 기존의 3개의 약도매상이 합병하여 탄생한 테바는 이후 14개의 제약회사를 인수함으로써 덩치를 키우며 이미 세계 제1위의 복제약 전문회사에 등극했다. 그러나 테바는 지난 7월 26일, 앨러간의 복제약 부문을 405억 달러(47조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공룡이 더 큰 공룡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세계적 제약회사가 전무하다. 그리고 규모 뿐 아니라 내실도 열악하다. 세계 50위 안에 들어가는 제약회사가 없을 뿐더러 지난 해 국내 최초로 연매출 1조를 넘긴 국내 1위 회사인 유한양행도 매출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리 달갑지 않다. 2011년까지 연매출 6000억원대에 머물던 유한양행이 1조 기업으로 등극한 것이 다국적 제약사들의 신약을 수입해서 판매를 대행하는 이른바 '도입 신약' 사업 덕분이기 때문이다. 유한양행의 전체 도입 신약 매출 규모는 2010년 32억원에서 2014년 2790억원으로 4년 사이 90배 이상 커졌다. 유한양행의 매출 상위 1, 2위 제품은 각각 외국 제약사인 길리어드에서 수입한 B형간염 치료제 '비리어드'와 베링거인겔하임의 당뇨병 치료제 '트라젠다'이다. 국내 1위 제약사인 유한양행이 뛰어난 제품 경쟁력이 아니라 뛰어난 영업 경쟁력으로 외국제품을 판매하여 매출을 성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본사가 판권을 회수하는 경우 일궈놓은 시장과 매출을 고스란히 빼앗기게 되는 취약한 구조다. 그뿐이 아니다. 세계 2위 기업인 화이자가 연간 약 10조원(매출의 13.5%)의 연구개발비를 사용하는 동안 유한양행은 그 1/100에도 못미치는 연간 약 560억원(매출의 5.6%)을 연구개발비로 사용하고 있다. 국내 제약사들이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규모를 키우는 것이 급선무인데 국내 제약사들에게서 이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M&A를 통한 국내 제약사들의 대형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이유는, 변화가 절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존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세계 무대와 달리 국내 제약환경은 아직도 따듯한 온실이다. 정부가 마련해놓은 안전장치 속에서 겉으로는 제약강국과 신약개발을 외치며 뒤로는 여전히 많은 제약회사들이 여전히 리베이트 영업에 의존하면서 가족경영을 지켜내고 있다. 정부가 복제약 사용을 권장하면서도 국내 제약사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높은 복제약가를 고수하고 있는 한, 국내 제약회사들은 연구개발에 몰두하지 않고서도 안정적인 수익창출을 유지할 수 있다(우리나라는 전문의약품 약가를 정부가 결정한다). 그러니 수백개에 달하는 제약회사들이 변화를 꾀할 이유가 없고 대다수 기업들이 가족기업이 되었다. 창업자가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유한양행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제약회사들이 창업자가 아들에게 물려주고 또 다시 아들은 손자에게 물려주는 식의 가족기업이 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제약회사들은 가족간의 경영권 분쟁이 유달리 많다. 창업자가 아직 현직에서 활동하는 한미약품을 제외하고, 동아제약, 녹십자, 대웅제약 등 국내 대형 제약사들에서 예외없이 부자간 또는 형제간에 경영권 분쟁이 벌어진 것이다. 제약기업의 발전과 확장보다 경영권 지키기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제약사들의 현주소다. 그리고 이유는 정부가 제약기업들의 안정적인 수익원을 보장하는 제도를 마련한 데서 출발한다.
대한민국은 과거의 대한민국이 아니며, 과거도 되돌아갈 수도 없고 되돌아 가서도 안 된다. 메르스 사태에서 드러난 우리나라 보건복지정책의 후진성은 보건의료산업에도 해당된다. 정부가 마련해 놓은 온실 속에서 성장해 온 우리나라 제약기업들의 국가경쟁력은 취약하기 이를데 없다. 바이오 의약산업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미래산업의 핵심산업이다. 이제라도 정부는 우리나라 제약기업들이 세계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온실의 비닐막을 거두어야 할 것이다.
노환규 의료희망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