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뒤 폐지가 예정된 사법시험을 두고 찬반 논쟁이 뜨겁다. 일각의 주장에 불과했던 ‘사시 존치 주장’은 최근 여당을 중심으로 입법 발의까지 되는 등 논의가 구체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위기감을 느낀 로스쿨 측도 집단적인 맞대응에 나서기 시작했다. 양측은 상대편을 서로 “기득권”으로 지목하며 이를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시존치, 그 끊이지 않는 논란을 해부한다.(편집자 주)
◇개천에서 용 나는 시스템 남겨둬야
사법시험 존치를 주장하는 측의 주된 논리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스템’을 남겨둬야 한다는 것이다. 한 해에 1500만원이 넘는 로스쿨 등록금은 너무 비싸기 때문에 사법시험을 유지해 저소득층이 법조계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대한변호사협회와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몇 대째 유지해 온 공식적인 주장이다.
2000년대 말부터 사시존치를 주장해 온 나승철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도 최근 다시 사시 존치 운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는 “사회적 합의로 사시가 폐지됐다고 해도 그것은 8~9년 전의 얘기이고 현재는 국민 75%가 사시 존치를 원한다”며 “로스쿨이 가진 단점을 사법시험으로 보완하자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고 주장한다.
대한변협과 서울변회, 새누리당 오신환 의원을 비롯한 여러 국회의원, 신림동 고시촌 상인들 모임인 관악발전협의회 등은 이미 수차례 토론회를 열며 ‘사시존치 논리 다지기’에 집중하고 있다. 사법시험 수험생들도 “한해 선발인원을 200명으로 제한해 사시를 유지하게 해달라”고 입법 청원을 내고, 헌법재판소에 사시폐지를 막아달라는 헌법소원도 제기한 상태다.
◇"불투명성이 로스쿨 불신 자초"
사시 존치론자들은 불투명한 로스쿨 입학제도와 로스쿨 출신 경력법관 채용이 로스쿨 제도에 대한 불신을 자초했다고 주장한다.
검사나 변호사 등 일정 기간 법조 경력을 쌓은 사람들을 판사로 임용하는 ‘법조일원화’ 도입 후 지난해 처음으로 로스쿨 출신 경력법관 37명을 선발한 대법원은 평가항목과 채용자 명단을 비공개했다.
이후 판사 임용이 내정된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대형로펌에 다니면서 과도한 대접을 받는 이른바 ‘후관예우’ 논란이 일자 대법원은뒤늦게 경력법관 임용 시 명단을 공개하고 실제 임용 전까지 자발적으로 공익활동에 종사하도록 유도하겠다고 방침을 밝혔다.
지난 6월에도 감사원 고위직의 로스쿨 출신 자녀들이 감사원에 변호사로 채용되는 과정에 특혜가 있었다는 의혹으로 국민감사 청구가 제기됐지만, 감사원은 문제가 없었다며 이를 기각했다.
지난달에는 새정치연합 윤후덕 의원이 지역구 소재 대기업에 딸의 취업 청탁을 한 사실이 드러나고, 경력법관에 임용된 한나라당 김태원 의원 아들의 정부법무공단 근무 이력으로 특혜 의혹이 일면서 로스쿨 논란은 정점으로 치달았다.
정확한 통계는 아직 없지만 전·현직 국회의원과 법조인, 고위 공직자의 자녀가 로스쿨 1기로 대거 입학해 변호사 자격을 얻고 대형 로펌, 대기업에 들어가거나 법원 재판연구관(로클럭)을 거쳐 법관으로 임용된 경우가 상당하다고 법조계 인사들은 주장한다. 이런 가운데 불투명 논란이 일었던 로스쿨의 ‘변호사시험 성적공개’는 로스쿨 스스로가 아닌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공개 당했다.
◇로스쿨 운영 대학에 맡겨…공정성 시비 계속
현재 로스쿨은 교육부 소관으로 운영의 상당 부분을 각 대학의 자율에 맡기고 있다. 선발 시 기본적인 법학적성시험(LEET)을 치르지만, 사시에 비해 면접시험 등 선발에 다른 요소가 많아지면서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김한규 서울변회 회장은 “로스쿨로 촉발된 음서제 논란은 관련 제도를 법적으로 개선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로스쿨 선발 절차부터 시험 평가위원, 평가기준,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으면 제2, 제3의 특혜 의혹이 끊임없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기자실에서 열린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고시생 모임' 기자회견에서 권민식씨가 대표로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사시 폐단 막기 위해 도입한 것이 로스쿨"
로스쿨 측은 사시 존치론자들이 주장하는 ‘개천의 용’이라는 문구 자체에 반감을 표한다. 최환주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은 “개천의 용, 희망의 사다리라는 건 좋은 얘기로 들릴 수 있지만 시험 하나로 인생역전, 신분상승이 된다는 것은 구시대적 권위주의적 발상”이라며 “사법시험을 통해 바로 판검사가 되는 문제를 개혁하기 위해 로스쿨을 도입했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리자는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수도권 법원에 근무하는 한 부장판사는 “사시 존치를 주장하는 법조인들의 기저에는 자신들은 어려운 사시를 통과했다는 우월성이 깔려있다”면서 “설사 이번 사시존치 운동이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로스쿨 제도를 반대하고 부정적인 보도가 나가는 것 자체가 사시 출신들에게는
득이 되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 판사는 로스쿨에 재학중이거나 졸업한 자녀가 없다.)
국립대 로스쿨의 1년 등록금은 약 1000만원, 사립대는 약 2000만원으로 3년을 보내면 약3000만~6000만원이 드는 고비용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로스쿨 측은 경제적 취약계층을 위해 5% 특별전형을 실시하고 있고, 로스쿨 등록금 대비 장학금 지급비율은 39.3%(2013년 기준)로 많은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사시합격 기간 기약 없어
두 제도를 모두 경험해 본 한 변호사는 “로스쿨은 3년이라는 정해진 기간이 있지만 사법시험은 1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사법시험 준비비용이 적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며 “사시 준비로 포기하게 되는 기회비용도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원우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은 “일반전형으로 들어온 학생도 (가정의) 연소득이 2600만원 이하가 23%인 데 일반전형으로 들어오는 학생들이 모두 고위층으로 오해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의사, 약사, 회계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이들이 법조계로 진입해 전문성이 커졌다는 것은 로스쿨의 대표적 장점으로 꼽힌다. 55회 사시 합격자들의 전공 비중은 법학이 81.1%, 비법학이 18.8%인 반면 지난해 로스쿨 합격자의 전공 비중은 법학이 49.4%, 비법학이 50.6%였다. 로스쿨 안에서 ‘이공계’ 출신으로 구성된 학회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논란이 되고 있는 ‘현대판 음서제’에 대해 로스쿨 변호사들은 “취업청탁은 사법시험 시절에도 있었다”면서 “개인적 양심의 문제이지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항변한다. 취업 청탁 문제로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취업 경쟁자인 다른 로스쿨생들인데, 로스쿨 출신이라는 이유로
‘낙인’을 찍는 분위기가 억울하다는 것이다.
◇"사시존치 주장은 혼란만 가중"
사법시험 존치 논란이 거세지자 로스쿨 교수들과 졸업생들도 최근 공식적인 대응에 나서기 시작했다. 전국 25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원장들은 지난달 31일 한 데 모여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적 합의로 생겨난 로스쿨 제도가 제대로 정착되기도 전에 다시 사법시험을 존치해야 한다는 주장은 법조인 양성제도에 혼란을 키울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로스쿨 출신 법조인들의 모임인 한국법조인협회(한법협)는 지난 4일 창립총회를 열고 정식 출범을 알렸다. ‘사법시험-연수원’ 체제와 다르게 전국에 흩어져 있어 의견을 한 데로 모으기 힘들었던 로스쿨 출신의 법조인들이 ‘사시 폐지’에 공식적으로 대응하기 나선 것이다. 지난 7월 374명이었던 한법협 회원수는 2달만에 두 배에 가까운 649명(9월5일 기준)으로 늘었고, 앞으로도 늘어날 전망이다.
전국법학전문대학원 학생회장단이 지난달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기자실에서 최근 국회의원들이 '사법시험 존치'를 주제로 연이은 공청회와 토론회 개최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조승희 기자 beyond@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