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지난 9일 오후 인천 영종도 인천공항공사 인재개발원에서 진행된 서울시내 면세점 입찰기업 프레젠테이션(PT)에 참석한 양창훈, 한인규 HDC신라면세점 공동대표를 격려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서울 시내 면세점 신규 사업권을 둘러싼 혈전이 지난 10일로 막을 내렸다. 롯데와 신세계 등 유통 공룡들의 탈락 속에 HDC신라면세점과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가 대기업군에 주어진 2장의 티켓을 나눠가졌다. 중견·중소기업군에 배분된 1장은 SM면세점 차지였다.
이로써 지난해 기준 8조3000억원 규모의 국내 면세점 시장 구도는 급변이 불가피해졌다. 특히 호텔신라로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지목되던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에서 롯데의 독주를 저지할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이 과정에서 단연 주목받은 이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다. 그가 최근 들어 보여준 모습은 국민적 공분의 대상이 됐던 다른 재벌 총수 일가들과 겹치면서 더욱 눈길을 끈다.
우선 면세점 유치 경쟁 과정에서 전격적으로 현대산업개발과 손을 잡으면서 사촌 지간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을 경쟁자로 돌려세웠다. 유치 경쟁이 총수 간 자존심 싸움으로까지 비화되면서 입찰 참여 기업들 사이에서 '결과에 따라 임원들이 옷을 벗을 수도 있다'는 말이 나돌자, 그는 “저는 옷을 벗을 수도 없다”는 말로 실무진 긴장을 풀게 했다. 또 지난 9일에는 심사 최종 관문이던 프레젠테이션 장소에 합격을 기원하는 떡을 들고 나타나 “잘되면 다 여러분 덕이고, 떨어지면 제 탓이니 너무 걱정 말라”고 해 리더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앞서 지난달 중순에는 메르스 확진 환자가 제주 신라호텔에 투숙한 것으로 드러나자, 즉각 제주로 날아가 호텔 영업 중단과 함께 관련 정보 공개를 지시했다. 하루 3억원의 영업손실을 떠안은 것은 물론, 투숙객들에게는 숙박료는 물론 항공권까지 보상했다. 이후에도 9일간 제주에 머물며 현장을 점검했다. 당시 원희룡 제주지사는 “삼성서울병원이 호텔신라처럼 협조했다면 사태를 훨씬 빨리 진정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는 따가운 지적과 함께 이 사장에게 깊은 감사를 표했다.
제주 상황이 진정되자 이번에는 중국으로 날아갔다. 메르스 사태로 중국인 관광객들이 급감한 가운데 중국 최대 여행사 CTS 총재, 국영 여행사 CYTS 부총재, 국가여유국, 외교부 관계자 등을 잇달아 만나 “메르스가 진정되고 있으니 중국 여행객의 한국 방문을 늘려달라”고 했다. 중국인 관광객은 국내 면세점의 매출액을 좌우하는 큰 손으로, 이 사장의 외교적 노력은 이번 면세점 유치 경쟁에서 플러스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뒤따랐다.
또 지난해 2월에는 한 택시가 신라호텔 출입구 회전문을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하자 직원을 시켜 택시기사 사정을 알아보게 한 뒤, 그가 낡은 빌라 반지하 방에서 뇌경색으로 쓰러진 아내와 함께 어렵게 살아가는 것을 보고 받고 피해 변제를 호텔 측이 지도록 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인터넷 상에서는 재벌가 맏딸이 보기 드문 좋은 선례를 남겼다며, 국내 재벌문화의 변화를 촉구하기도 했다.
지표로 확인된 경영능력 또한 탁월하다는 평가다. 2001년 이 사장이 호텔신라 경영에 참여할 당시 매출액 4304억원에 불과하던 호텔신라는 지난해 연결기준 2조9090억원을 기록할 정도로 폭발적 성장세를 거듭했다. 외모뿐만 아니라 흐름을 짚는 맥락과 결단력 등은 부친인 이 회장을 쏙 빼닮았다는 얘기가 재계에 회자됐다. 특히 강한 카리스마의 부친과는 달리 소통과 포용력에 있어 이부진 색깔이 드러난다는 분석도 이어졌다.
이 사장에 대한 여론의 평가도 호의적이다. 지난달 <토마토CSR리서치센터>가 발표한 ‘2015 대한민국 재벌 명성지수’ 결과를 보면, 이 사장은 2·3세 부문에서 오빠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누르고 1위에 올라 화제가 됐다. 미국 경제 주간지 포브스는 경영실적 등을 근거로, 이 사장을 ‘리틀 이건희’라 칭하며 세계 경제 100대 파워우먼에 선정했다.
이처럼 이 사장이 주목을 받으면서 재계에선 삼성의 경영권 승계자인 이재용 부회장과 비교하는 얘기들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의 한 고위임원은 “이 사장의 경영능력 등에 대해서는 삼성 내에서도 별다른 이견이 없다”며 “다만 그룹 전반을 봐야 하는 이 부회장과는 처한 여건이 다르다”고 말했다.
김기성·김영택 기자 kisung012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