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어린이날 서울 쌍림동
CJ제일제당(097950) 사옥에 마련된 쿠킹클래스 현장. 서툰 솜씨로 요리를 준비하는 남성들의 손길이 바쁘게 움직였다. 이날 CJ제일제당 백설요리원이 주최한 '아빠의 오감만족 건강한 요리'에 참석한 남성들은 레시피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막상 요리가 시작되자 다른 남성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주변 테이블을 힐끔거리며 금세 분주해졌다.
남성들은 저마다 앞치마를 두르고 아내나 강사를 불러 같은 질문을 반복하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자신의 힘으로 요리를 완성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쿠킹클래스에 참여한 류한동 씨와 딸 채린 양, 아들 지후 군.(사진제공=CJ제일제당)
그중 배우 류한동(46)씨 는 양파를 잘게 다지는 것부터 한바탕 진땀을 빼야 했다. 지후(10) 군과 채린(9) 양은 그런 아빠 곁에서 잔심부름을 도우며 그를 응원했다.
류한동 씨는 최근 들어 요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가족들과 함께 쿠킹클래스를 신청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평소 할 수 있는 요리는 국수와 간단한 볶음밥이 전부였다"면서 "다양한 레시피를 배워 가족들에게 맛있는 요리를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반면 옆 테이블의 회사원 원성진(40) 씨는 한식조리사자격증도 갖춘 실력파다. 그간 일이 바빠 요리를 하지 못했지만 최근 TV 방송 등을 통해 남성들이 요리를 하는 모습이 방영되면서 그 또한 실력발휘에 나섰다.
그의 아내 심선경(39) 씨는 "방송에서 남성들이 요리하는 것을 보면 남편도 요리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며 "예전과 달리 캠핑을 가면 직접 요리를 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아들 준우 (9)군도 "아빠의 앞치마가 멋있다"면서 "지금처럼 요리를 자주 해줬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CJ제일제당 백설요리원은 5일(아빠), 6일(맞벌이남편), 7일(독신남) 3일간 남성을 대상으로 한 쿠킹 클래스를 기획했다.(사진제공=CJ제일제당)
이번 쿠킹클래스는 무려 10대 1을 상회할 정도로 높은 경쟁률을 보이며 '아빠'들로부터 관심을 끌었다.
CJ제일제당에 따르면 이번 쿠킹클래스는 백설요리원이 처음으로 남성들만을 대상으로 개최한 것으로 8팀 정원에 81건의 신청이 이뤄졌다. 정원이 채워질까 반신반의했던 제일제당 측은 예상을 넘는 높은 신청률에 무려 73팀을 탈락시켜야만 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어린이날을 맞아 차가 막히는 놀이공원에 가는 것보다 요리를 배우고 이를 통해 가족 간의 친밀도를 높이는 것이 더 좋다고 보는 남성들이 많아진 것 같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요리에 대한 남성들의 높아진 관심은 사회적 트렌드로 이어지고 있다. 배우 차승원의 능숙한 요리솜씨가 인기를 끄는 등 방송에서 요리콘텐츠가 빈번히 다뤄지면서 이슈화를 부추겼다. 맞벌이 가정이나 독신 남성이 늘어난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이들에 의한 식재료 판매는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11번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남성이 구매한 소스 등의 식료품 매출은 전년비 평균 79%가 증가했다. 남성들의 주방용품 구매도 동기간 62%가 상승했다.
특히 매출이 증가한 식료품인 밀가루·전분(96%↑), 고추장·된장·간장(61%↑), 설탕·소금(76%), 소스·드레싱(81%↑), 조미료·양념(80%↑)은 남성들이 하기 쉬운 단품요리에 없어서는 안 될 재료들이다.
김준영 11번가 식품담당 MD는 "남성 소비자가 구입한 식료품 매출의 증가율은 동 기간 식료품 전체 매출 증가율인 43%를 크게 상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추세는 최근 줄고 있던 요리책의 판매량도 끌어올렸다. 지난 3월 교보문고에서 요리관련 도서의 판매량은 전월대비 무려 40%가 증가했다. 요리책 판매량의 증가가 다시금 식료품의 판매증가로 이어질 지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진영균 교보문고 브랜드관리팀 대리는 "요리책 판매는 올해 1~2월까지는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지만 최근 요리하는 남자와 관련된 프로그램이 방영되면서 전년도 판매량을 회복했다"고 전했다.
남두현 기자 whz3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