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15일 수천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강덕수 전 STX 회장이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에서 구치소로 이송되고 있다.ⓒNews1
김우중의 뒤를 이은 샐러리맨 신화 강덕수. 성공의 전설도 그룹 몰락과 함께 이 땅에서 사라졌다. 특히 횡령·배임·분식회계 혐의로 지난해 10월 1심에서 징역 6년의 중형을 선고 받으면서 실패한 경영자와 함께 범죄자라는 오명까지 씌워졌다.
대중의 기억 속에서 지워진 그의 심경이 들려왔다. “억울하다”는 항변과 함께 “희생양”이라는 주장이었다. 한발 더 나아가 “나는 영원한 비주류였다”는 말이 전해졌다. 한때 재계 서열 11위까지 올랐던 재벌그룹 총수의 입에서 나온 한탄이라 믿기 어려웠다.
말의 의미를 쫓기로 했다. 그의 변호를 맡고 있는 법무법인 율촌과 쌍용중공업 시절부터 그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온 비서와 연락이 닿았다. 강 전 회장에게 수차례 서신을 보내고, 그가 수감돼 있는 서울구치소에 접견을 신청했다. 서울구치소는 강 전 회장이 미결수로 재판이 진행 중인 데다, 인터뷰 내용이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내용을 들어 불허 결정을 알려왔다.
흩어진 그의 측근들을 찾아 나섰다. 대개 “더 이상 관계가 없다”는 냉담한 반응이 돌아왔다. 어렵사리 만난 이들조차 입을 열기 꺼려했다. 더 이상 그는 예전 그룹을 좌지우지하던 ‘힘 있는’ 회장님이 아니었다. 그래도 몇몇은 남들이 잘 모르는 강 전 회장의 불우한 성장배경과 몰락의 시작이 된 채권단과의 관계, 최근 심경 등을 들려줬다.
강 전 회장은 유복자였다. 모친은 신현확 전 총리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며 자식들을 키웠다. 남의 집, 그것도 힘 있는 집에서 더부살이를 한 강 전 회장에게 계급 상승에 대한 욕구는 어찌 보면 당연했다. 성공에 대한 집착은 그를 평사원에서 대기업 회장으로 이끄는 내적 동인이 됐다.
남부럽지 않게 성공하면서 재벌사회의 일원으로 편입코자 했지만, 이 같은 신분 상승은 그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창업주에서 2세대, 3세대로 넘어온 전통 재벌가문의 장벽은 높았고, 이들을 중심으로 한 재계의 시선은 싸늘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시작으로 한국무역협회, 대한상공회의소로 대외활동의 범위를 넓혀갔지만 그는 그저 돈 있는 비주류이자, 근본 없는 마름 정도에 불과했다.
그럴수록 정치권 등 힘 있는 자들과의 교류에 힘을 쏟았다. 일종의 보험이자 방패막이 성격이 짙었다. 재계에서는 ‘로비’가 STX 급성장의 배경이라고 수군댔다.
외형 확장에 치중하던 STX그룹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불어 닥친 조선업황 침체에 직격탄을 맞았다. 유동성이 고갈됐고, 세계 최대 조선소를 꿈꿨던 STX다롄은 그룹의 발목을 잡았다. 조선을 중심으로 한 수직계열화는 조선이 무너지자 줄줄이 넘어지는 연쇄 도산으로 이어졌다.
웅진그룹 사례를 들며 주력사인 STX조선해양의 법정관리를 강권하던 내부 기류를 물리치고 산업은행에 손을 내밀었지만, 되돌아온 것은 경영권 박탈과 검찰 고발이었다는 게 강 전 회장과 주위의 생각이다.
산업은행은 현 정부 들어 민영화가 거론될 정도로 공공부문 개혁 1호로 꼽혔고, STX를 희생양 삼아 개혁의 칼날에서 벗어났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재무구조 개선 약정은 산업은행이 작성한 일방적 약정문에 의해 강압적으로 맺어졌고, 이 과정에서 강덕수 당시 회장은 행장은커녕 부행장과 통화조차 연결되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배제됐다는 부연도 이어졌다.
강 전 회장의 오래된 한 측근은 “금숟가락 은숟가락 물고 태어난 재벌가 사람이 아니면 절대 그들만의 이너서클에 들어가지 못하는 게 우리나라”라며 "배경도 없는데, 돈마저 없어지니 모두들 회장 곁을 떠났다"고 말했다. 그에 대한 숱한 경영책임론은 뒤로 하고, 그의 인생을 통해 들여다보는 한국 재벌사회의 장벽은 분명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