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의원> 포스터 (사진제공=쇼박스 미디어플렉스)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모차르트와 동시대에 태어나 활동한 음악가 살리에리는 늘 모차르트를 시기했다. 오만하고 신경질적이며 세속적인 모차르트가 미웠다. 모차르트에게 엄청난 재능을 쥐어준 하늘에 대한 원망도 컸다. 살리에리는 전형적인 율법주의자의 태도로 모차르트를 철저히 파괴하려 한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상의원> 속 조돌석(한석규 분)과 이공진(고수 분)의 관계는 살리에리와 모차르트를 떠올리게 한다. 조선 왕궁의 엄격한 규율을 무시한채 제멋대로 옷을 만들어내는 이공진과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후 시기와 질투에 휩싸이는 조돌석의 모습은 많이 닮아있다.
30여년간 왕의 옷을 만드는 상의원에서 최고의 위치인 어침장을 유지하며 끝내 양반의 신분을 얻기 직전의 돌석은 오롯이 재능만 갖고 있는 자유로운 영혼 이공진을 파괴할까.
영화는 참신한 소재로 출발한다. 옷을 만드는 상의원이라는 공간은 생소하다. 곤룡포를 만드는 것과 사냥할 때 입는 옷, 상복 등이 모두 까다로운 규율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정보도 있다. 그러다보니 볼거리가 많다. 10여억원을 들인 의상제작과 50여명에 달하는 한복 전문가를 통해 1000벌 이상의 한복을 만들어 이를 스크린에 담았다. 눈이 즐겁다.
<남자사용설명서>를 통해 독특한 연출을 선보인 이원석 감독은 <상의원>에서도 자신만의 재주를 선보인다. 특히 궁중신에서의 영상미는 꽤 볼만하다.
초반부 유머코드도 웃음을 크게 안긴다. 마동석과 배성우를 필두로 한 웃음신은 감각적이다. 유머가 크게 어울리지 않는 한석규도 틈틈히 웃음기 넘치는 신을 선사한다. 늘 우수어린 눈빛으로 깊은 내면의 인물을 표현해온 고수는 가볍고 천진난만한 이공진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선사한다. 남의 체형에 맞게 옷을 기가 막히게 만드는 이공진처럼 딱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다.
◇고수-한석규-박신혜-유연석(왼쪽위부터 시계방향) (사진제공=쇼박스 미디어플렉스)
배우들 연기력도 흠 잡을 곳이 없다. 조선판 살리에리가 된 한석규는 부드러움 속에서 날 선 광기를 보인다. 마지막 대결이 끝난 뒤 공진을 바라보는 시기어린 눈빛은 소름이 돋는다. 왕도 어울리지만 왕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한석규도 어색함이 없다. 어떤 역할을 해도 그 이상을 해내는 배우다.
고수는 위에 언급한 것처럼 연기를 잘했다. 기존 이미지를 벗고 변신에 완전히 성공했다. 현대판 카사노바를 연기해도 잘 어울릴 것 같다는 기대감을 준다. 조각 같은 얼굴에서 비춰지는 미소와 무언가에 사로잡혀 몰두하는 디자이너의 모습 모두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왕비 역의 박신혜와 왕을 연기한 유연석의 발전은 실로 놀랍다. <7번방의 선물> 이후 다시 한 번 스크린에 도전한 박신혜는 자신의 얼굴만으로도 스크린을 압도할 수 있다는 역량을 보여준다. 왕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있는 설움이 온전히 전달된다.
광기 어린, 외로운 왕을 연기한 유연석은 충무로가 주목하는 인재답다. <응답하라 1994>에서는 풋풋함을, <제보자>에서는 신중함을 보여준 그가 이번에는 외로움이 광기로 변한 왕을 제대로 그려낸다. 배우들의 호연을 지켜보는 맛이 있는 영화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렇게 많은 장점들이 하나로 조화롭게 어우러지지 않는다는데 있다. 영상미와 소재, 호연이 겹쳤지만 커다란 한 방이 없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돌석이 단순히 재능만 있는 공진에게 질투를 느껴야 하는지에 대한 감정선, 공진이 왜 왕비를 위해 헌신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미흡하다. 미완성의 느낌이 강하다. 초반부는 굉장히 가벼운데 반해 후반부는 급격히 무겁다. 완급조절에 실패했다는 느낌도 든다. 한 줄기로 잘 엮어지지 않는 스토리는 산만하다.
영화가 개봉하고 나면 호불호가 갈릴 듯 싶다. 누군가에게는 꽤나 신선하고 재밌는 영화로, 누군가에게는 밋밋한 영화로 느껴질 듯 싶다. 그럼에도 장점이 많은 영화라는 건 분명하다. 퓨전사극의 재미를 즐기는 관객이나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와 같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충분히 즐거울만한 영화다.
상영시간 127분. 개봉은 12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