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2014년 12월 10일 오전 9시48분. 예정보다 일찍 한 중년의 말쑥한 남성이 검은색 에쿠스를 타고 서울중앙지검 청사로 들어니다. 150여명의 취재진이 일제히 그에게 시선을 꽂습니다. 이른바 '비선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정윤회(59)씨입니다.
정씨가 포토라인에 서자 건장한 남성 2명이 그의 양 옆에 따라 섭니다. 취재기자들이 몰려들어 마이크를 들이밀고 심경을 묻자 정씨는 "불장난 한 사람, 불장난에 맞춰 춤춘 사람들이 모두 밝혀질 것"이라는 알듯 말듯 한 말을 남기고 이내 들어갑니다.
기자들이 달라붙지만 좌우의 건장한 남성 2명이 견제를 합니다. 이 남성들은 검찰 수사관들입니다. 취재진 사이사이에도 검찰 수사관들이 배치돼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습니다.
▶검찰 "정씨, 협박 받고 있다며 보호 요청"
정씨의 출석일시가 확정된 뒤 검찰은 사전에 출입기자단에 정씨의 변호사가 신병보호를 요청해왔다며 협조를 당부했습니다. 신병보호 요청 사유는 정씨가 협박을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장 "과잉보호 아니냐", "청와대 비호를 받는 것 아니냐"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이런 의혹은 정씨 출입 당일에도 불거졌습니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본적으로 고발인이 요청을 하게 되면 그분들이 원하는 정도에 맞춰서 저희가 신병보호 조치를 해드린다. 법령에 근거가 있다. 오늘 경우는 언뜻 150~200명 모이지 않았나. 워낙 많은 인원이 몰려 있으니까 혹시 모를 사태 대비해 직원 몇 명을 배치한 것이다. 사안에 따라서 하는 것이지 정씨를 특별히 보호하는 것 아니다. 200여명이 있는데 정씨가 다치거나 하면 검찰도 문제고 기자들도 문제고, 사회적 문제가 되지 않겠나."
▶수사관 밀착 보호..취재진에 섞여있기도
기자들이 의문을 품은 것은 검찰에 출석하는 인사를 수사관들이 나가서 보호해 들어오는 광경은 이례적이기 때문입니다.
단, 선거법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원장이나 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기소된 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예외입니다. 이 분들은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알아서' 모셨습니다. 두 기관이 직접 나선 것은 이 분들이 피의자 신분으로 신변보호 대상이 아니기도 하지만 검찰을 못 믿었기 때문 아니었을까요?
어쨌든 검찰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그 '법령상 근거'를 찾아봤습니다. 형사소송법에는 없고 대검예규 <범죄피해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지침>에 근거가 있습니다.
이 지침은 범죄 피해자를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일반적 절차를 규정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적용대상은 범죄의 직접 피해자와 배우자(사실혼 포함), 그의 직계친족 및 형제자매입니다. 여기에 범죄신고자, 참고인 또는 증인이나 그 친족, 수사의 단서 등 기타 범인검거에 협조해 보복을 당할 우려가 있는 사람도 포함됩니다.
▶대검 예규상 참고인도 보호대상
정씨는 이날 참고인이자 고소인(피해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했으니 검찰의 신병보호 조치는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우리도 피해자나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게 될 경우를 대비해서 꼭 기억했다가 혹 그런 일이 생기면 이런 검찰 서비스를 이용해야겠습니다.
그러나 과잉보호 의혹은 또 있습니다. 검찰은 이날 정씨가 조사를 받게 될 조사실이 있는 서울중앙지검 청사 4층과 11층의 기자 출입을 갑자기 제한했습니다.
출입기자들은 공식 절차를 거쳐 검찰에 정식으로 출입을 등록한 언론인들입니다. 특정 층에 대해 출입기자들의 출입을 제한한 것은 이례적입니다. 더구나 11층은 전날까지만 해도 출입이 가능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한 검찰 관계자의 해명을 그대로 옮겨봅니다.
▶"수사 보안·예민한 사항..정씨 돌아가도 통제"
"취재하는 건 이해하는 데 (조사실)들어가는 사람 잡고 자꾸 물어보니까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 출입처 아닌 분(출입기자가 아닌 분)들도 오신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조치를 취했다. 수사보안이라 검찰도 예민한 사항이다. 정씨가 돌아가도 11층은 그렇게 될 것 같다. 특히 4층은 사무실 앞에 (수사 받다가)대기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들에게 많이 물어본다. 수사 받는 사람에게 그러면 수사에 많은 지장이 있다."
물론 수사가 먼저입니다. 게다가 수사는 보안이 생명이지요. 그러나 굳이 정씨가 출석한 날 이런 조치를 한 것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차라리 청사 출입문 경비를 강화하는 게 맞는 것 아닙니까?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 쓰지 마라"는 속담이 생각납니다.
정씨는 '비선실세'로 지목되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의혹을 받고있는 사람입니다. 청와대의 비호가 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검찰이 한 점 의혹 없이 불편부당하게 이 사건을 수사할 의지가 있다면 이러면 안 되는 것 아닐까요? 검찰의 이번 사건 수사 의지에 대한 물음표가 나라 안 여기저기를 떠다니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정윤회씨가 10일 오전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News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