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방서후기자] 지방 이전을 앞두고 있는 공공기관의 자산매각이 좀처럼 성사되지 않고 있다.
유찰을 거듭해도 여전히 비싼 가격과 한정된 용도로만 사용할 수 있는 종전부동산에 투자자들이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19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따르면 지난달 진행된 국토연구원 등 이전시기가 임박한 공공기관의 청사와 부지 대부분이 유찰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토연구원과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은 각각 7번, 13번의 유찰 끝에 감정가격을 내려 매각에 들어갔지만 주인을 찾지 못했다.
이번 매각은 캠코가 지방이전 시기가 임박한 공공기관의 자산 매각에 도움을 주고자 입찰자를 직접 찾아나선다는 취지로 개최한 국가자산투자설명회를 가진 이후 진행된 절차다. 하지만 설명회 이후 팔려나간 자산은 한국장학재단과 한국전기안전공사 등 2개 기관에 불과하다.
◇수차례 유찰에도 가격 내리기 힘들어..한정된 용도도 문제
상황이 이렇다 보니공공기관 종전부동산 매각에 대한 위기론이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현재 열차례 넘는 유찰을 겪은 해양과학기술원의 감정가는 917억원, 국토연구원은 749억원으로 여전히 가격 부담이 크다는 평가다.
통상 유찰시 20~30%씩 저감되는 경매와 달리 공매는 10%씩 저감되고 최초 감정가 대비 절반이상 떨어지면 진행이 중단 된 후 새로운 매각예정가격이 결정된다. 하지만 이는 압류재산이나 국유재산에 해당되는 사항으로 공공기관 등 이용기관이 온비드를 통해 자체매각하는 재산은 이같은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다.
종전부동산 매각금액은 공공기관의 이전비용과 연계 돼 있는 만큼 해당 기관에서 부동산 시장상황에 따라 자체적으로 판단해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매각을 하고자 하는 기관이 자체 내규에 따라 가격과 저감률까지 임의대로 정하고 있기 때문에 유찰을 거듭해도 가격이 파격적으로 할인되지는 않는다.
또한 종전부동산을 매입한 이후에도 용도가 제한돼 있다는 점도 투자자들이 외면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실제로 해양과학기술원의 경우 1종 일반주거지역에 연구시설 용도로 지어졌다. 1종 일반주거지역은 건폐율 60%이하, 용적률 200%이하, 4층이하 단독주택과 공동주택 내지는 수퍼마켓을 비롯한 1종 근린생활시설로 건축이 제한돼 있다.
이에 따라 해양과학기술원은 아파트 등을 지어 수익을 낼 수 있는 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본원 땅의 용도를 변경해 달라고 안산시에 요청했지만 시는 변경 허가를 내주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상권만 하더라도 공기업과 사기업 주변 분위기가 다르다"며 "강남 한전부지도 용도 변경으로 인한 용적률 상향 기대감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일대 개발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 국토교통부, 혁신도시 이전 추진 총력..효과는 '글쎄'
이같은 문제들 때문에 국토교통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지만 종전부동산 매각을 촉진하기는 커녕 시장에 더욱 혼선을 가져왔다는 지적이다.
국토부는 지난해 7월 이전공공기관이 부동산 매각을 위해 경쟁입찰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2회 이상 유찰돼 재공고 할 경우 즉시 매각가격을 조정할 수 있도록 개선했고, 용도가 제한된 공공기관의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의 '혁신도시 개발 촉진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기존에는 이전기관이 경쟁입찰을 추진하다 여러번 유찰되더라도 즉각적인 가격조정이 불가능해 재감정평가 등 복잡한 절차를 반복해야 매각가격을 조정할 수 있었지만, 2회 이상 유찰시 신규공고 절차를 따르지 않고서도 매각가격을 조정해 재입찰 공고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 연구시설 등 특정한 용도로만 사용하도록 도시계획시설이 지정된 공공기관의 민간 매입 수요를 끌어들이기 위해 용도 변경을 허용했다. 이에 따라 국토연구원은 업무·숙박·의료시설로 용도 변경을 허용했으며, 에너지관리공단과 식품연구원도 용도 변경과 도시관리계획 변경을 추진했다.
하지만 용도 변경 이후 가격이 불어난데다, 이 마저도 재감정평가 등의 절차 없이 가격을 즉각 조정할 수 있게 되면서 땅장사를 조장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교육연구 및 복지시설로 용도가 제한됐던 국토연구원은 761억원에 냈던 매각공고를 취소하고 지난해 12월 789억으로 가격을 올려 내놓았다 연 이은 유찰 사태를 맞았고, 2107억원이었던 식품연구원은 2140억원에 재공고를 내기도 했다.
이같은 추세라면 해당 공공기관의 혁신도시 등 지방 이전에 차질이 생길 수 밖에 없고, 이전 대상 지역의 부동산 시장은 물론 지역 경제에 부정적인 영항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국민의 막대한 세금 부담까지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총 151개 이전대상기관 중 지난달 말 기준 50개 기관만이 이전을 마친 상태다.
김천석 오메가리얼티 소장은 "부동산 경기가 아직 살아나지 않은 상황에서 가격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쉽게 나서는 투자자나 기관이 없을 것"이라며 "종전부동산 매각을 통해 이전비용을 마련해야 공공기관의 혁신도시 정착도 제대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인데 이런식으로 일정에 차질이 생긴다면 정부가 대신 해당 기관을 매입해야 하는 등 국민들의 세금이 나가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가격을 내려 매각하기도 곤란한 상황이다. 국민의 재산이나 다름 없는 공공기관을 민간 투자자에게 헐값으로 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경쟁입찰을 통해 유찰이 된 경우 매각가격을 인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지 무조건 싸게 팔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며 "유찰 이후 재입찰 공고를 내는 과정에서 재감정평가 등의 절차를 간소화한 것일 뿐, 여전히 가격을 조정하기 위해서는 해당 기관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가격 인하결정이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종전부동산의 매각가격을 너무 인하하면 분명 헐값 매각 논란과 그에 따른 특혜시비가 존재할 것이고, 이전기관들이 혁신도시로 이전하면서 신청사를 지을 때 신축 비용을 제대로 조달하지 못할 수 있어 가격 인하에 대한 부분은 기관과 정부 모두 조심스러운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국토부는 이전기관 중 종전부동산 미매각 등으로 자체 재원조달이 어려운 정부산하기관(출연기관·공공법인)이 청사신축 부족재원을 금융권 등에서 차입하는 경우 이자의 일부를 지원하기로 했다. 청사 신축비 30% 범위 내에서 연 2%의 이자를 지원해주고 있으며, 현재 국토연구원,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관리공단, 한국교육개발원,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대한적십자사, 한국가스안전공사 등 7개 기관에 877억원이 투입된 상태다.
또 다른 국토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사실상 이자후불제"라며 "공공기관 지방 이전 계획에 100%는 아니라도 일정부분 기여하는 바가 있지 않겠느냐"며 기대를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