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집 앨범을 발매한 가수 이소라. (사진=포츈 엔터테인먼트)
[뉴스토마토 정해욱기자] 사람들에겐 반전 드라마가 인기입니다. 예상치 못한 전개가 주는 통쾌함이 있기 때문이죠. 예상대로만 흘러가선 드라마도, 인생도 재미가 없을 겁니다.
최근 발표된 이소라의 8집 앨범이 그런 반전의 묘미를 잘 보여주는 음반입니다. 약 20년 전에 발표됐던 ‘난 행복해’는 여전히 이소라의 대표곡 중 하나입니다. 당시만 해도 이소라는 차분한 느낌의 발라드 가수였습니다. 잔잔한 피아노 선율과 어우러진 감성 가득한 목소리. 그게 이소라의 트레이드 마크였습니다. 하지만 8집 앨범을 듣는 순간 이런 생각은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강렬한 기타 사운드와 거침 없이 내지르는 창법은 록밴드의 음악을 연상시킵니다. 국내를 대표하는 록밴드인 YB의 앨범과 비교해도 강렬함에서 뒤지지 않습니다. 밴드 사운드만 들어서는 이소라의 음악인지, YB의 음악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물론 가사와 이소라의 목소리를 덧입힌 노래는 YB와는 뚜렷한 차이점을 보여줍니다. YB가 구체적이고 직설적이라면 이소라는 추상적이고 은유적입니다.
1번 트랙의 ‘나 focus'는 이소라의 특유의 몽환적인 느낌으로 시작되는 노래입니다. 하지만 기타 연주가 점점 강렬해지면서 감정도 고조됩니다. 이소라는 ’너‘라는 청자를 설정한 뒤 “오랜 시간이 흘렀어 모두 변하고 있어. 나도 잘 할 수 있어. 거짓말 똑같은 말 믿어준다면 나 너에게만은 더 잘할게. 너와 내가 바라는 그런 애가 내가 될게”라고 노래하지만, 사실은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줍니다.
2번 트랙의 ‘좀 멈춰라 사랑아’에선 록 사운드가 더 강렬해집니다. 이소라와 헤비메탈,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둘이 만나 묘한 매력을 만들어냅니다. ‘좀 멈춰라 사랑아’는 사랑 노래입니다. 하지만 그저 흔한 사랑 노래가 아니라 이소라식 사랑 노래입니다.
“처음엔 무슨 얘긴가 싶었는데 계속 듣다 보니까 집밖으로 잘 안 나오는 누나가 방구석에서 혼자 사랑하고 이별한 얘기더라. 굉장히 짠한 노래다.”
‘좀 멈춰라 사랑아’를 작곡한 정준일의 얘기입니다. 그의 말대로 집안에서 혼자 사랑과 이별을 경험한 이소라를 상상하고 있으면 짠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경험 덕분에 이 노래는 특별해질 수 있었습니다. 흔한 대중가요에서 직접적인 가사와 설정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과 달리 이소라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3번 트랙의 ‘쳐’와 4번 트랙의 ‘흘러 All through the night', 5번 트랙의 ’넌 날‘, 6번 트랙의 ’너는 나의‘ 역시 록사운드와 이소라의 특별한 만남을 보여주는 노래들입니다.
강한 기타 사운드가 인상적인 ‘쳐’의 시작은 충격적이기까지 합니다. 이소라는 예쁘게 만들어서 목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거친 록커와 같이 정제되지 않는 듯한 방식으로 음을 툭툭 던집니다.
이 노래들을 듣고 있으면 무대 위에서 머리를 흔들며 헤드 뱅잉을 하는 록커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이소라는 마치 음악에 취한 듯 밴드 사운드에 기대 감정을 고스란히 내뱉습니다. 이소라의 감성적인 표현이 돋보이는 '너는 나의'의 가사를 잠시 보고 가겠습니다.
"혼자 사는 건 아닌가요 묻는 사람도 없어. 혼자 사는 건 아니죠 선잠이 깨면 울었어. 나 혼자 서 있다 수많은 밤이 흘렀어."
이소라의 이번 앨범 수록곡들은 대중가요의 히트 공식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흐름에 따라 진행됩니다. 이 때문에 기-승-전-결의 형태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기-승-승-승과 같은 구조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대중들의 입장에선 익숙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소라의 색깔을 가장 두드러지게 할 수 있는 방법이란 생각도 듭니다.
이번 앨범은 이소라의 오랜 팬들 뿐 아니라 록 음악 마니아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앨범입니다. 이소라는 자신만의 색깔에 록 사운드를 덧대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습니다. 이소라의 실험적이고 몽환적인 느낌이 록 밴드 사운드에 더해지면서 독특한 매력을 만들어낸 거죠.
◇이소라가 앨범 발매에 앞서 공개한 타이틀곡 '난 별'의 악보. (사진=이소라 트위터)
타이틀곡은 8번 트랙에 수록된 ‘난 별’입니다. 사람을 별에 빗대 표현했습니다. 저마다의 궤도가 있는 별처럼 사람들도 자신만의 궤도를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 중 우연히 만나 인연을 만드는 사람도 있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평생 마주치지 않기도 합니다. 이 노래도 록 사운드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이번 수록곡들 중에선 가장 잔잔한 편입니다. '난 별'은 충분히 새롭고 실험적이지만, 다른 노래들에 비해선 충격이 조금 덜합니다. 새로운 음악적 시도에 깜짝 놀랄 팬들의 충격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기 위해 이소라가 '난 별'을 타이틀곡으로 선택한 듯도 합니다.
이소라는 읇조리는 듯한 창법으로 "모든 일의 처음에 시작된 정직한 마음을 잃어갈 때. 포기했던 일들을 신념으로 날 세울 때. 별처럼 저 별처럼"과 같은 가사를 부르면서 자신이 왜 최고의 뮤지션 중 한 명인지를 보여줍니다. 다른 가수들은 따라하기 힘든 이소라만의 화법이 확실히 느껴집니다.
마지막 트랙의 ‘운 듯’은 여백이 느껴지는 노래입니다. 수차례 반복되는 “날 울게 해”란 가사에 모든 감정이 담겼습니다. 이소라는 시시콜콜 무슨 일이 있었고, 누구 때문에 울게 됐는지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빈 틈을 만들어놓고, 그곳에 듣는 이들이 각자의 감정을 통해 이입하게 만듭니다.
이소라의 앨범이 발표된 뒤 음악인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습니다. 특히 힙합 뮤지션 타블로의 반응이 눈에 띕니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소라 선배님 짱"이라는 글을 남겼죠. 이소라는 지난 2011년 발표된 타블로의 노래 '집'에 피처링으로 참여를 했었는데요.
물론 선배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타블로가 이소라에 대해 언급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소라의 이번 앨범엔 힙합 뮤지션까지 사로잡을만한 매력이 분명 있습니다. 힙합은 저항 정신을 기본으로 합니다. 그리고 이소라 역시 록 사운드에 자신만의 스타일로 그런 저항의 정신을 담았습니다. 저항의 종류가 조금 다르긴 합니다. 보통의 힙합 음악이 세상과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을 다루는 반면 이소라는 자기 내면 속 저항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죠.
반전의 매력이 담긴 이소라의 앨범을 듣노라면, 대역전극이 펼쳐진 경기를 보면서 한 유명 야구 해설자가 했던 “야구 몰라요”란 말이 떠오릅니다. 그 해설위원이 이소라의 8집 앨범을 들으면 이런 얘기를 하지 않을까요? “이소라 몰라요.”
< 이소라 정규 8집 ‘8’ >
대중성 ★★★☆☆
음악성 ★★★★★
실험성 ★★★★★
한줄평: 록에 빠진 이소라, 그녀의 변신은 무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