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우성문기자] 일본의 어닝시즌이 막바지에 접어든 가운데 일본 기업들의 지난해 실적이 크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기업들의 실적 개선을 이끈 일등 공신은 단연 '엔저 효과'였다. 여기에 기업들의 내부 개혁 또한 합쳐져 긍정적인 시너지를 냈다.
다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향후 일본 기업들의 수익 전망에 대해서는 엇갈린 의견을 내비치고 있다.
일본 정부가 당분간 현재의 엔화 약세 정책을 유지할 가능성이 커 엔저 효과는 계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신흥국 성장 둔화와 소비세 인상 등의 리스크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日기업 순이익 2배 가까이 껑충..제조업 실적 개선 가시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7일 일본 기업들의 순이익이 거의 2008년 금융 위기 이전 수준으로 개선됐다고 보도했다.
일본 증권사인 SMBC닛코시큐리티의 자료에 따르면, 회계연도 기준으로 지난해 3분기(2013년 4월~12월)까지 실적을 내놓은 비금융권 기업 803개의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배가량 늘어난 13조300억엔으로 집계됐다.
특히 제조업체들의 실적 개선이 두드러졌다. 제조업체들의 순익은 전년 동기 대비 3배 가까인 늘어난 7조7600억엔을 기록했다.
실제로 일본 최대 자동차 업계 도요타는 작년 3분기(10월~12월) 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5배 이상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또한 도요타는 작년 전체 순이익(2013년 4월~2014년 3월)은 1조9000억엔, 영업이익은 2조4000억엔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는 2007년 이래 사상 최대치다.
혼다 역시 지난해 9개월간 순이익이 40%나 증가한 4030억엔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2년째 적자를 이어오던 전자업체 파나소닉 역시 연간 흑자 전환을 코앞에 두고 있다. 파나소닉의 지난 분기 순이익은 전년 대비 20% 증가한 737억엔을 기록했고 3분기까지 누적 순익은 2430억엔이었다.
샤프 역시 3분기까지 누적 순익이 177억엔을 나타내 전년동기 4243억엔 순손실에서 흑자로 반전에 성공했다.
비제조업체들의 순익 역시 54.4%나 증가했다. 특히 무역 회사들이 우수한 실적을 공개했다.
일본의 종합무역회사인 미쓰비시상사는 오는 3월에 마감하는 작년 회계연도 이익 목표치를 종전의 4000억엔에서 4200억엔으로 상향 조정했다.
다른 일본의 종합무역상사 이토추 역시 2013회계연도 순익 전망치를 예상치보다 7% 높은 3100억엔으로 제시했다.
일본 미쓰이물산의 지난해 3분기 순익도 1047억엔으로 사전 전망치 920억엔을 뛰어넘었다.
금융권도 실적 개선이 두드러졌다.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MUFG)의 지난해 4~12월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48% 급증한 7854억2000만엔을 기록했고 스미토모미쓰이파이낸셜그룹(SMFG)의 순익 역시 전년 동기 대비 25% 늘어난 7047억1000만엔을 기록했다.
◇엔저 효과·강력한 내부 개혁이 실적 개선 도와
대부분의 기업들은 실적 개선의 첫번째 이유로 엔저 효과를 꼽았다.
실제로 이번에 실적이 개선된 기업들 중에는 수출에 중심을 둔 제조업체들이 많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 정책 아베노믹스에 힘입어 엔화 가치는 지난 2012년 이후 달러 대비 25%나 떨어지며 수출 기업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최근 1.5년간 달러·엔 추이>
파나소닉은 실적 발표에서 "엔화 가치 하락으로 인해 제품 판매량이 늘었다"고 밝혔다. 도요타 역시 실적 개선의 첫번째 이유를 "엔화 약세에 따른 경쟁력 강화"로 꼽았다.
페기 후루사카 무디스 연구원은 "엔화 약세가 도요타의 경쟁력을 강화했다"며 "특히 원화 가치가 상승함에 따라 한국 자동차 업체보다 일본 자동차 업체의 경쟁력이 강해진 것이 실적 호조를 이끌었다"고 분석했다.
엔저 효과가 기업 실적 개선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일본 기업들의 내부 개혁 노력 역시 실적 개선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파나소닉은 지난해 수익성 개선을 위해 플라즈마(PDP) TV 사업에서 과감하게 손을 떼고 반도체 사업부 인력을 반으로 줄이는 등 뼈를 깎는 수준의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도요타 역시 엔저 효과 이외에도 비용 절감 노력이 실적 개선을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내부 개혁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은 기업들은 엔저 효과에도 불구하고 부진한 성적을 내놨다.
그 예로 3년 연속 부진에 늪에 빠져있는 닌텐도를 들 수 있다. 가정용 게임기 '위유'의 부진으로 닌텐도는 작년 회계연도에 350억엔의 영업 손실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매출 역시 예상치 9200억엔보다 훨씬 낮은 5900엔으로 전망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닌텐도가 하드웨어 사업에서 손을 떼고 모바일 게임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지만 닌텐도는 기존의 하드웨어 사업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고집하고 있다.
닌텐도 뿐만이 아니다. 2012회계연도에 순익 430억3000만엔으로 5년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던 소니는 작년 회계연도에 TV와 PC 사업 부진으로 1100억엔의 순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결국 소니는 PC사업 매각과 인원 감축 등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선다고 밝혔다.
◇엔저 정책 유지에도 앞으로 실적 전망은 '안갯속'
향후 일본 기업들의 실적 전망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엇갈린 의견을 나타내고 있다.
우선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당분간 엔저 기조가 이어져 기업들의 엔저 효과 또한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무라증권이 투자자들을 상대로 향후 엔화 흐름을 예측한 결과 응답자의 40%는 올해 말까지 엔화값이 105~110엔으로 더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계획대로 오는 4월 현행 5%인 소비세가 8%로 높아지게 되면 소비가 위축될 것을 대비해 일본 정부가 추가 부양책을 내놓을 수 있고, 이로 인해 엔저 속도가 가속화될 수 있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여기에 일본 도쿄 도지사 선거에서 아베 총리의 강력한 지원을 받은 마스조에 요이츠가 압승을 거둔 것 역시 아베노믹스의 탄력이 예고되며 엔화 가속화에 더욱 무게를 실리게 하고 있다.
나오히코 바바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은행(BOJ)은 소비세 인상에 따른 경제 충격을 막기 위해 추가 완화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예측했다.
다만 이러한 엔저 효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기업 실적에 해가 될 수 있는 여러가지 리스크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신흥국 시장 위기는 신흥국 시장으로의 수출 비중이 큰 일본 기업들에게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특히 WSJ은 태국과 인도 등 신흥국 경제 성장이 둔화되면 히타치와 도요타 등 제조업체들이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신흥국 시장 성장 둔화가 수출 기업들의 실적 악화로 고스란히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전에 마사루 카토 소니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이전에 "신흥시장의 성장 둔화에 따른 충격으로 예상했던 것보다 상황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프란코이스 로저 타케다 CFO 역시 "중·장기적을 봤을 때 신흥국 시장 불안은 완화될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로서 변동성이 아주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엔저에도 소니와 닌텐도 등의 기업들이 부진한 실적을 낸 것에 대한 우려도 있다. 엔저가 일본 기업 실적 개선에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소니와 파나소닉이 과감한 내부 공사에 나선 것처럼 일본 기업들이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버리고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과감한 개혁들을 시행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마크 매튜스 율리우스배어 리서치 이사는 "일본 기업들이 변화를 거부한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