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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오현경 "객석 누군가와 감정 나눌 때 배우로서 자부심 느껴"
입력 : 2013-09-17 오후 12:14:11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배우 오현경(사진·78)' 하면 사람들은 1987년부터 1993년까지 방송된 <TV 손자병법>의 만년과장 '이장수'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이장수로 분한 오현경은 요즘 말로 '갑'의 세상에서 '을'로서 사는 소시민의 애환을 현실감있게 그리며 시청자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예나 지금이나 안방극장이 아닌 연극무대를 마음 속 고향으로 꼽는다. 텔레비전 출연이 잦아든 것과 비례해 연극무대에 서는 빈도수가 늘었다.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대학로와 명동 등 극장이 있는 지역에 주기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요즘은 오는 23일부터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오르는 연극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이하 '그것은 목탁구멍..'>의 연습에 한창이다.
 
◇배우 오현경씨(사진=김나볏 기자)
 
배우 오현경의 연극 사랑은 그 역사가 제법 길다. 고등학생 시절 연극 무대에서 처음으로 연기하는 맛을 들였고 연세대에 진학한 후에는 연세극연구회에 들어가 아예 연극에 푹 빠져 지냈다. 방학이면 <조선연극사>를 뒤지며 나름의 고증을 거쳐 꼭두각시 인형극을 하기도 했다. 연기로 유명해지자 신입생 1학기 때 전교생 투표를 통해 3학년들이나 하는 응원단장에 뽑혔다. 가짜 대학생이 많던 시절이었다. '연대에서 오현경을 모르면 가짜 학생'이라는 얘기도 나돌았다.
 
대학로에서 만난 오현경에게 학창시절 성적은 어땠는지 묻자 "전공과목은 뒷전이고 교양과목을 많이 들어 졸업학점이 넘쳤다"는,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답이 돌아왔다. "대학교를 어떻게 졸업했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시험만 봤습니다(웃음). 매 학기와 방학마다 연극을 해 총 12작품 하고 나왔어요. 연극만 했죠." 인터뷰 도중 오현경 선생은 "박첨지 소리 같은 것은 지금도 외우고 있다"면서 즉석에서 흥얼거리기도 했다.
 
연기만 바라보고 한우물을 판 지 어느덧 60년. 오현경은 올해 7월 우리나라 예술가를 대표하는 기관인 대한민국예술원의 신규 회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문학, 미술, 음악, 연극·영화·무용 등 4개 부문에서 두드러진 공적이 있는 예술인을 대상으로 하는 자리, 단순한 유명세만으로 얻을 수 없는 자리다. 배우로서 이같이 영예로운 위치에 오르기까지는 각고의 노력이 따랐다. 소위 말해 '뜨고 나서도' 오현경은 학창시절 활동했던 연세극연구회를 비롯해 졸업 후 몸 담았던 극단 실험극장과의 인연을 유지하며 꾸준히 연극무대에 섰다. TV로 유명세를 탔지만 "배우로서 정체성이 행여 흔들릴까 염려해" TV의 상업광고(CF)는 찍지 않았다.
 
연극이든, TV든, 영화든 매체를 불문하고 연기의 예술성을 놓지 않으려 고군분투해온 이 노장 배우는 TV와 연극 사이 선을 긋는 사람들에게는 서운한 감정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무슨 배우냐고 하면 우리는 탤런트, 연극배우, 영화배우, 이런 식으로 분리하지만 사실 합쳐야 해요. 배우가 배우지. 일본만 하더라도 문예 배우냐, 노 배우냐, 가부끼 배우냐를 따지지 우리처럼 배우를 나누지는 않는다고."
 
배우 오현경은 피차 지적을 주고 받는 관계가 발전적이고 건강하다고 믿는 쪽이다. 반 백 년 이상의 세월에 걸쳐 연극 무대에 섰건만 선후배를 막론하고 누군가로부터 지적을 받고 배우는 게 여전히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래야 실제 무대에서 망신을 당하지 않는단다.
 
오현경은 대학동문이자 한국연극계의 대표 연출가 중 하나로 꼽히는 오태석 연출가와 막역한 사이다. "연배나 학년이 나보다 밑이지만 기성무대 데뷔가 빠르니 오태석이 연극계 선배"라는 오현경은 "걔한테 내가 제일 만만한 선배일 것"이라고 말하며 웃는다. 그러면서도 "오태석은 나도 인정하는 예술가이지만 학자나 기자들이 무조건 오태석을 신봉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꼬집는다. "'선생님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하고 브레이크 거는 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느낀 아쉬움에서 나온 지적은 우리나라의 또 다른 대표 연출가 이윤택에게도 돌아간다. "지난번에 연극 <베니스의 상인>을 할 때 나한테 전혀 연습을 안 시켰어요. 계속 맘대로 하라고 그러길래 정말 맘대로 했죠. 근데 그러면 앙상블이 이뤄지지 않아요."
 
아무리 그래도 까마득한 후배들과 함께 하는데 지적을 받는다면 대선배의 속내가 마냥 편할 리 없다. "사실 나이가 드니 출연자 중에서도 나를 모르는 사람이 있는데 가끔 '이렇게 해보시죠', 이러는 친구들이 있어요. 솔직한 얘기로 듣기 싫어. 내가 이 나이에 애들한테 연기지도까지 받아가며 하는 건 참 힘들어요. 그래도 참고 하는 거예요. 전체적으로 성공하려면 앙상블이 이뤄져야 하니까."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무대에 섰을 때 시대와 동떨어지지 않는 감동적인 연기를 펼치는 것은 어쩌면 소심하면서도 꼼꼼하며 권위적이지 않은 성품 덕분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추석 이후 대학로예술극장 무대에서 상연되는 <그것은 목탁구멍..>에서 오현경이 새롭게 맡은 역할은 방장스님이다. 방장스님은 주인공인 도법스님에게 불상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하며 극적 흐름을 바꾸는 인물이다. 짧게 등장하지만 오 배우 특유의 명확한 인물 분석이 빠질 리 없다. "방장은 제일 어른 스님인데, 흔히 말하는 '도통한 선생'이에요. 일상적인 말을 하는 것 같지만 그게 다 뭔가 하나의 생각을 거쳐서 나오는 것들이죠. 그런 사람들은 이야기를 아주 쉽게 한다는 특징이 있어요." 오씨는 이번 작품에 출연하면서 이후에 제안 받은 다른 작품 두어 개를 포기했다. <그것은 목탁구멍..> 제작진이 1년 전부터 배우 섭외에 공을 들인 데다 겹치기 출연을 워낙에 꺼리는 까닭이다. "다른 작품은 서너 달 전에 이야기 하는데 이건 1년 전부터 얘기했으니까. 그래서 후회스럽다거나 그렇진 않아요. 공연은 겹치지 않게 해야 합니다. 하나에 집중해도 될까 말까 한데.."
 
오현경에게 연극이라는 장르의 매력은 무엇인지 물었다. "연기는 재창조예요. 희곡에 써 있는 것을 구체적인 현실로 보여주는 거죠. 결국은 자기만의 창조에 따른 희열 때문에 연기하는 것 같아요. 마치 같은 방정식을 푸는 것처럼, 각기 다른 사람이 똑같이 연습하고 연기해도 끝에 가면 '오현경'이 남잖아요. 서로 똑같으면, 1~2등이 있으면 누가 연기를 하겠어요. 그 사람 아니면 안 되는 뭐가 있잖아. 그런 매력이 있는 거죠. 그래서 더더욱 이런 저런 기본적인 연기술을 익혀뒀다가 잘 써먹어야 해요."
 
또한 오씨는 연극의 매력이 배우의 자존심과도 연관돼 있다고 말한다. "열악함 속에서도 내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할 때, 역할에서 내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할 때, 그 때 객석의 누군가가 나와 감정의 교류를 하고 돌아갔다는 걸 나 자신이 생각할 때. 그 때 배우로서 프라이드를 느껴요. '나는 배우다' 하고 말이죠."
 
특히 생활 속 진실을 무대 위 진실로 표현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누차 강조했다. "재주만 가지고 승부하려 하면 안 돼요. 어떤 예술이 재주만 가지고 돼. 재주는 마지막에 가서 승부가 나는 거지. 여러가지 연기기술을 철저히 연마한 후 진짜 연기가 가능해요." 인터뷰가 끝나고 연습실로 직행하는 것을 보니 베테랑 배우에게도 연기의 지름길은 없는 모양이다. "무대에서 잠깐 실수했을 때 몇 시간 가는 것 같을 때가 있어요. 진땀 나죠. 연습한 게 다 소용 없게 되고 하니 얼마나 속상해.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연습을 열심히 하는 수 밖에 없어요."
 
김나볏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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