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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극장에서 포의 심연을 체험하다
산울림 고전극장, 에드거 앨런 포 소설 낭독공연
입력 : 2013-01-08 오전 8:10:33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요즘 극장을 다니다보면 소설을 연극으로 읽는 낭독공연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2003년 한일연극교류협의회의 '현대일본희곡 낭독공연'을 통해 본격화된 낭독공연 바람은 이후 소설까지 끌어들이며 지평을 넓혔다. 연희문학창작촌의 '연희목요낭독극장',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의 '단편소설입체낭독극장'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12월 7년만에 무대로 돌아온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복귀 무대를 위해 소설 낭독공연 형식을 빌렸다. 이쯤되면 소설 낭독공연이 국내에서 하나의 장르로서 자리잡았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28년째 홍대 인근을 지키고 있는 소극장 산울림도 올해 1월 소설 낭독공연의 대열에 본격 합류했다. '고전 읽는 소극장'을 모토로 삼은 기획공연 '산울림 고전극장'은 오는 3월10일까지 소극장 산울림에서 펼쳐진다.
 
사실 그동안 소극장 산울림은 오랫동안 문학과 연극의 가교역할을 도맡아왔다. 개관초기부터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시몬느 드 보봐르의 <위기의 여자>, 박완서의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등 국내외 다양한 소설을 연극화하는 한편 2011년부터는 젊은 연출가들에게 틈틈이 낭독공연 무대를 제공했다.
 
이번 '산울림 고전극장'의 포문을 연 것은 극단 여행자 소속인 이대웅 연출의 <검은 고양이, 심술궂은 어린 악마, 모렐라>다. 에드거 엘런 포의 소설 세 개를 옴니버스식으로 묶었는데, 소극장 산울림의 공간적 특징 덕분에 포 특유의 괴기스러운 분위기가 잘 살아났다. 반(半) 아레나 형태의 극장은 관객으로 하여금 마치 인간의 어두운 심연을 내려다보는 듯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극장의 형태는 소설 속 배경과도 적절히 어우러졌다. 배우 최경훈이 낭독한 <심술궂은 어린 악마>와 배우 한인수가 낭독한 <모렐라>는 조명을 벽에 투사해 각각 지하 감옥과 창문 있는 방 안을 표현했고, 배우 장현석이 낭독한 <검은 고양이>의 경우 배우의 움직임을 통해 지하실 공간임을 나타냈다.
 
이 밖에 조명과 영상, 음향, 마이크, 소파 등이 극중 상황변화에 따라 간결하면서도 분명한 의미를 띄고 사용됐다. 포의 소설에서 두드러지는 광기와 분노, 악마성, 심술 등의 상징이 역설적이게도 빈 무대, 최소한의 연출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났다.
 
세 공연 중 이성과 감정, 합리와 불합리가 뒤섞인 포의 소설을 가장 잘 '읽어낸' 것은 <검은 고양이>였다. 특히 배우의 호연이 돋보였는데, 장현석은 적절한 완급조절로 병적인 범죄심리의 생성과정을 자연스럽고도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해냈다.
 
소설 낭독공연은 텍스트의 핵심적인 특징을 잡아내 이미지나 정서를 극대화함으로써 새로운 감각을 자극한다는 장점이 있다. <검은 고양이, 심술궂은 어린 악마, 모렐라>가 심연의 낭떠러지에 서서 죽음의 풍경을 목격하는 듯한 묘한 감정을 자아낸 것도 낭독의 형식에 힘 입은 바 크다. 
 
공연은 오는 13일까지 이어지며 '산울림 고전극장' 전체 프로그램은 3월10일까지 계속된다. 극단 여행자의 <라쇼몽>, 극단 작은신화의 <카프카의 변신>, 극단 청년단의 <야간비행>, 양손프로젝트의 <현진건 단편선-새빨간 얼굴> 등이 순차적으로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김나볏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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