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기성·양지윤기자] 재계가 때 아닌 ‘부유세 신설’ 주장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12일 재계는 애써 평온함을 되찾는 분위기였다. 전날 있었던 술렁임은 하루 만에 잦아들었다. 여야가 동시에 부유세 신설에 대해 난색을 표하면서 현실화 가능성이 지극히 희박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씁쓸함은 남아 있었다. 특히 보수정당인 새누리당의 대선 총괄사령탑이 이 같은 주장을 내놓은 것에 대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고위 관계자는 이날 “정책을 발표하려면 어느 정도 조율되고 논의된 결과물이 나와야 하는데 개인적인 의견을 내놓는 수준에 불과했다”며 못마땅해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경제 성장이 우선시돼야 하는 시점에서 (불필요한) 증세 논쟁은 경제 활력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유환익 전경련 경제정책팀장은 이중과세 문제를 지적하면서 “세원은 넓히고 세율은 낮추는 식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무 대책 없이, 계산 없이 무작정 정책을 쏟아내면 정책의 불확실성은 증대되고 기업하기는 힘들어진다”며 “장기불황의 가능성이 짙은 상황에서 부유세 신설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4%로 대폭 하향 조정한 것도 반론의 근거로 활용됐다. 저성장 국면으로 접어드는 상황에서 무엇보다 투자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성장 기조 유지가 해답이라는 주장이다.
전수봉 대한상의 조사1본부장은 “특정 계층을 겨냥한 증세에 반대한다”고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감세정책을 통해 그나마 경제위기 속에서도 버티고 있는 것”이라며 “법인세 인하 등 감세는 세계적 추세인데 우리가 역행하려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 본부장은 “복지 미비, 양극화 심화 등을 이유로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경제민주화의 취지에 대해서는 공감한다”면서도 “이런 방법으로 해소될 지는 의문이다. 가뜩이나 경기가 침체인데 증세가 오히려 기업에 부담을 주고 경기를 악화시키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반응도 매한가지였다. 특히 한 대기업의 고위 임원은 “새누리당이 방향을 잃어도 한참 잃었다”며 “정체성부터 되찾길 바란다”고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너도나도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외치는데 이를 뒷받침할 성장은 어느 누구도 얘길 하지 않고 있다”며 “여당이 야당에 끌려 다녀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도대체 어느 편인지 헷갈릴 정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그룹사 관계자도 “아무리 대선이 코앞이라지만 경제정책 방향을 이렇듯 손쉽게 뒤흔들어선 안 된다”며 “증세 등 조세제도 개혁은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뒷받침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책의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경제는 더 힘들어진다”고 덧붙였다.
앞서 김무성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총괄본부장은 11일 본부장 임명 직후 선대위 중앙위 워크숍에 참석해 “부자가 더 많은 세금을 내도록 부유세를 신설해야 한다”며 부유세 신설 카드를 꺼내들었다. 김 본부장은 또 통일세, 보육세와 함께 음주자와 흡연자에 대한 목적세 신설도 주장했다.
그는 “야권은 증세를 하지 않고 복지를 한다고 국민을 속이고 있다”며 “세금을 늘리지 않는 복지 확대는 우리나라 재정 여건에서 불가능하다. 국가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면서 복지 수요를 관리해 모두를 충족시키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의 발언이 큰 파장을 낳자 새누리당은 즉각 당론이 아님을 강조하며 진화에 나섰다. 당내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을 이끌고 있는 남경필 의원조차 “증세는 큰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대선 전에 부유세를 도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민주통합당 대선 경제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이정우 선대위 경제민주화위원장은 “(증세에) 여태까지 반대하다가 갑자기, 그것도 대단히 과격한 세금을 들고 나오는 것은 정말 뜻밖”이라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상속세에 비해 열등한 방식”이라며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한편 진보적 성향의 학계와 시민사회는 보수의 총결집을 주장했던 김 본부장이 부유세 신설을 꺼내들자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기류가 뚜렷했다. 다만 주장의 주체와 상관 없이 ‘증세 없는 복지는 어렵다’는 명제와 논리성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반론도 잇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