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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속 맨홀에 빠져 사망..배상책임은 얼마?
입력 : 2012-08-22 오후 5:58:45
 
[뉴스토마토 김미애기자] 폭우 탓에 뚜껑이 열린 맨홀에 빠져 사망했거나 가로등 누전으로 감전되었을 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게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법원은 그간 폭우와 같은 일반적 예측을 벗어난 천재(天災)는 국가나 지자체 등 시설관리자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연재해라 하더라도 피해를 막기 위한 예방이나 관리 조치를 소홀히 한 인재(人災)인 경우 피해자에 대한 지자체의 손해배상 책임을 일부 인정하고 있다.
 
자연재해가 예측 가능성을 벗어날 정도로 이례적인 것이었는지, 피해방지 조치를 잘 했느냐에 따라서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 여부가 달라지는 것이다.
 
◇법원 "통화로 맨홀 못 본 망인도 과실"
 
장마철 폭우로 하수량이 증가했을 때 간혹 맨홀의 뚜껑이 열려 차량이나 보행자가 빠지는 등 교통혼잡 및 안전사고 위험의 요인이 된 경우가 있다.
 
관계 행정기관에서는 이를 대비해 맨홀 뚜껑의 이상 유무를 수시로 점검하는 한편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비상출동 태세를 갖춰야 한다.
 
최근 법원은 시민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다 뚜껑이 열린 맨홀 구멍에 휩쓸려 사망한 망인 박모씨의 유족이 지자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지차체의 책임을 70%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은 22일 박씨 등의 유족이 서울시와 강서구를 상대로 낸 5억원대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는 3억6000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서울시로부터 맨홀 관리를 위탁받은 업체는 수년간 맨홀에 체인 및 안전철망이 정상적으로 설치되어 있는지 여부를 점검하지 않았다”며 “불가항력으로 맨홀의 체인이 끊어지고 안전철거망이 파손되었다는 서울시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다만 재판부는 “망인은 도로가 70~80cm로 침수되었는데도 우회도로를 이용하지 않고,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면서 자전거를 타다 맨홀로 물이 빠지는 소용돌이를 발견하지 못한 채 사고를 당했다”며 침수된 도로사정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망인의 과실도 30% 인정했다.
 
◇가로등 누전으로 감전..법원 “안전조치 소홀”
 
또 폭우가 내릴 때 침수된 도로를 걷다가 가로등에 감전됐을 경우 법원은 집중호우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지자체의 책임을 85% 인정했다.
 
지난 2001년 7월 이모씨는 서울에 집중호우가 내렸던 서초구의 한 도로변을 걷다가 가로등 누전으로 감전사고를 당해 좌안 황반변성(망막중심부 상해) 증상이 생기자 소송을 냈다.
 
최근 서울고법은 이씨가 서울시와 서초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들은 원고에게 위자료 등 58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집중호우로 도로가 130cm 높이까지 침수돼 감전사고의 위험이 높은데도 도로를 차단하는 등의 안전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등 관리상의 하자로 인해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다만 재판부는 “원고도 도로를 우회하는 등 안전조치를 강구한 잘못이 있는 만큼 피고들의 책임을 85%로 제한한다”고 덧붙였다.
 
법원은 장마철에 빗물이 고인 차도에서 인근 가로등의 누전된 전기에 감전돼 숨진 김모씨의 유족이 지자체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도 지자체의 배상책임을 75% 일부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가로등 점검용 덮개가 제대로 닫히지 않아 침수를 막을 수 없었고, 자동누전차단기도 설치하지 않는 등 관리에 문제가 있었다”고 판시했다.
 
사고 당시 음주상태였던 김씨의 과실과 집중호우가 사고를 확대했다는 점도 판결에 영향을 줬다.
 
◇‘침수된 월세방’..집주인에게 위자료 청구 가능
 
폭우로 지하 월세방이 침수됐다면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집주인에게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을까.
 
유모씨는 지난 2009년 10월 서울시 동대문구의 지하방을 월세 65만원에 사용하는 조건으로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알고 보니 유씨 방은 비가 오면 하수구가 역류하고, 누수가 발생해 방바닥이 차가워지는 등의 하자가 있었다. 이 때문에 유씨는 비가 올 때마다 집안에 흘러들어오는 물을 양수기로 퍼내야만 했다.
 
유씨는 집주인에게 수차례에 걸쳐 보수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자 이듬해 5월 ‘임대차 계약을 해지하겠다’며 집주인에게 통보하고 이사했다.
 
그런데 선불금으로 지불한 남은 임대료가 문제였다. 집주인은 “계약이 적법하게 해지되지 않았다”며 6월 이후분 4개월치 임대료를 돌려주지 않겠다고 맞섰고, 이에 유씨는 집주인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지난해 서울북부지법은 유모씨가 집주인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유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하수구의 오수 역류 현상 등은 유씨가 계약한 주택을 주거 용도로 사용할 수 없는 중대한 하자에 해당한다”며 “임대인이 보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이유로 한 ‘계약해지’는 적법하므로 집주인은 남은 임대료 3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이어 “유씨는 주택이 침수되면서 상당 기간 동안 정상적인 주거생활을 하지 못해 정신적인 피해를 입었다”며 집주인은 유씨에게 추가로 위자료 50만원을 지급하도록 명령했다.
 
김미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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