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미애기자] 한명숙(67) 전 국무총리가 9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9억원을 한 전 총리에게 공여했다는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53)의 검찰 진술은 신빙성이 없다고 봤으며, 한 전 대표와 한 전 총리간의 이해관계상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수수할 친분관계는 아니라고 종합적으로 판단했다.
또 재판부는 돈을 전달할 때 한 전 총리의 휴대전화로 직접 연락해 약속을 잡았다는 한 전 대표의 진술에 대해서도 '한만호씨가 전화번호를 알았다'는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외에도 일반적인 불법 정치자금의 수수행태에 비춰볼 때 한 전 총리 자택이나 인근 도로에서 조심성 없이 돈을 건넸다는 진술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3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재판장 김우진 부장판사)는 한 전 대표에게서 9억여원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기소된 한 전 총리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이 사건의 공소사실을 입증할 유일한 직접 증거인 한 전 대표의 검찰 진술은 신빙성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한만호 검찰진술의 신빙성 의심
재판부는 한 전 대표가 검찰에서 진술할 당시 한 전 총리가 자신을 도와주지 않은 것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갖고 있었고, 정치적으로 폭로를 이용해 사업상 이익을 얻으려 도모한 듯한 모습도 엿보였다는 점에 주목했다.
한 전 총리가 한 전 대표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9억원을 수수했음을 인정하는 유일한 직접 증거인 한 전 대표의 진술은 신빙성이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한 전 대표가 9억원의 금품 제공과 관련해 검찰에서 진술할 당시 한 전 총리에 대한 다른 형사사건 재판이 진행 중이었고 한 전 총리의 서울시장 출마 여부 등이 뜨거운 사회적 관심사였다"며 "한 전 대표는 수감 기간 중 자신에게 별다른 관심이 가지지 않았던 한 전 총리에 대한 원망의 마음과 검찰이 원하는 진술을 하지 않으면 추가기소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으며 이 사건 검찰 조사를 이용해 가석방 등 편의를 제공받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던 점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한 전 대표는 70여회에 걸쳐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한 전 총리에게 직접 정치자금을 공여했다고 일관되게 진술했으나 기본적으로 이는 모두 종전 진술의 확인과 법정증언을 위한 반복연습이었을뿐, 한 전 총리와의 대질신문을 통해 검증된 사실도 없다"며 "엄격한 증명을 요하는 형사사건에 있어서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을 만한 신빙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법원 "길에서 돈받을 친분관계 아니다"
법원은 한 전 총리 자택이나 인근 도로에서 돈을 건넸다는 진술은 일반적인 불법정치자금 수수 행태와 크게 다르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대통령선거 경선 후보자가 억대의 정치자금을 재정담당자나 믿을 만한 보좌직원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받는 것이 흔한 경우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어 "한 전 대표의 검찰 진술 중 한 전 총리에게 직접 정치자금을 전달한 방법은 두 사람의 친분관계에 있어서 과연 가능한 일이었을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며 "차에서 차로 돈을 전달받기 위해 한 전 총리가 개방된 도로상에 먼저 나와서 대기하고 있었다는 것은 국무총리를 역임한 대선 경선 후보인 한 전 총리의 지위에 비춰 부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또 "한 전 총리가 오랜 기간 깨끗한 정치인으로서의 이미지를 표방해온 점을 고려하면 불법정치자금 수수사실이 드러나는 것에 무감각하고 조심성 없게 행동했으리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노출되기 쉬운 장소에서 돈을 줬다는 진술은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채권회수목록·환전목록 증명 불능
한 전 대표가 운영한 한신건영의 B장부와 채권회수 목록 역시 공소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되지 못했다.
재판부는 "한 전 대표가 자금조성을 지시하면서 명시적으로 자금의 사용처에 관해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고, 한 전 대표가 '은팔찌' 이야기 등을 하고 총괄부장에 '한'이라고 기재하기에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의원님'이라고 대답해서 한 전 총리에게 가는 돈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라며 "채권회수 목록과 세부자료의 기재, 한 전 대표 비서의 진술만으로 조성된 3억원 및 2억원을 한 전 대표가 한 전 총리에게 전달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검사가 제축한 채권회수 목록, B장부, 9억원 상당의 자금 조성 및 환전 내역 등은 결국 9억원의 자금이 조성된 부분과 관련된 증거일 뿐, 이와 같이 조성된 자금이 한 전 총리에게 전달됐는지 여부를 증명하는 물증이 아니다"며 "검사가 제시하는 정황증거인 2억원을 전달받은 사실, 한 전 대표가 한 전 총리의 비서에게 3억원을 요구한 사실 등은 한 전 대표가 한 전 총리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공여했음을 추단케 하기에 부족한 간접사실"이라고 밝혔다.
◇검찰, 항소 의지 밝혀
검찰은 지난해 7월 한 전 총리를 기소한 이후 23차례나 열린 공판에서 변호인 측과 치열한 법정공방을 벌였으며, 검찰은 한 전 총리에게 징역 4년과 추징금 9억4000만원을 구형했다.
반면 법원은 한 전 총리 측근 김문숙씨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한씨에게서 법인카드 및 현금, 계좌송금, 차량·버스 제공 등을 통해 1억원에 가까운 이득을 취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9450여만원을 추징했다.
이날 판결이 선고된 후 한 전 총리는 "이번 판결은 정치검찰에 대한 유죄선고"라며 "돈 받은 사실이 없기에 무죄임을 확신하고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 전 총리는 이어 "2012년 정권 교체를 통해 검찰 개혁을 이루자"며 "이번 사건을 끝으로 더이상 수치스러운 야만의 정치 수사가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 전 총리가 지난해 4월 '5만달러 뇌물수수' 사건에 이어 9억원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자 검찰은 강력 반발했다.
서울중앙지검 윤갑근 3차장은 "법원의 무죄 판단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항소할 방침"이라며 "세부적인 사안은 판결문 검토 후 대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뉴스토마토 김미애 기자 jiir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