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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말라와 벼락부자
입력 : 2026-10-18 오후 12:59:59
요즘 동네 헬스장에 가면 부쩍 피곤하다. 맹목적인 유산소 운동보다는 근력 운동에 재미를 느끼는 편인데, 기구 다루는 법을 잘 몰라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봐가며 묵묵히 개인 운동에만 집중하고 싶을 때가 많다. 하지만 트레이너들이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PT 영업은 날이 갈수록 노골적이다. “이번 달에 특별히 나온 이벤트다”, “트레이너 한 명당 배정된 혜택이 몇 명 안 돼 선착순이라 얼른 결정하셔야 한다”며 재촉한다. 유난스럽게 느껴지는 끈질긴 강요의 이면에는 동네 헬스장들이 줄도산 위기에 처한 씁쓸한 현실이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땀을 흘려 살을 빼려 하지 않는다. 기적처럼 살을 빼주는 ‘마법의 약’이 등장한 탓이다.
 
‘결과’만 사려는 지름길(Shortcut) 중독 사회, 상반기의 ‘벼락부자’ 열풍이 하반기의 ‘뼈말라’ 신드롬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사진=구글 제미나이)
 
요즘 점심시간이든 지인들이 모이는 자리든 밥상머리 화두는 단연 ‘마운자로’다. 정부 부처 출입하는 모 기자가 마운자로를 맞고 미니스커트만 입고 다닌다는 소문부터 시작해, 국회에 있다가 최근 민간 기업으로 간 지인은 “82년생 대표가 마운자로 맞고 20kg을 빼 20대로 회춘했다”며 “50대인 자신도 주사를 맞아보겠다”고 설레발을 쳤다. 전형적인 경상도 아저씨였는데 강남으로 출퇴근하더니 아예 딴 사람이 됐다. 가장 솔깃한 풍문은 요새 의사들도 다 마운자로 맞고 살 뺀다는 얘기다. 비만을 치료해야 할 의사들조차 주사 한 방에 체중을 덜어내는 기적에 동참했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속 인스타그램을 열면 대한민국은 온통 ‘뼈말라’를 추구하는 말라깽이들의 나라다. 글로벌 빅파마들이 ‘메가 블록버스터’ 비만 신약들을 내놓은 뒤, 바벨을 들고 닭가슴살을 씹어 삼키는 정직한 땀방울의 가치는 어느새 효율이 떨어지는 미련한 짓으로 치부됐다.
 
열광의 이면에는 기묘한 모순이 도사리고 있다. 국민건강영양조사 등 각종 보건 통계를 살펴보면,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비만 유병률이 높게 나타난다. 현대 사회에서 진짜 고도비만에 시달리는 이들은 팍팍한 삶 속에서 값싼 당류와 초가공식품으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 저소득층에 집중돼 있다. 이른바 ‘비만의 양극화’다. 그러나 정작 혀를 내두를 만큼 비싼 약값을 감당하며 기적의 신약을 쓸어 담는 이들은, 애초에 살을 뺄 필요조차 없이 이미 날씬하면서도 더 앙상해지기를 갈망하는 부유층들이다.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탄생한 약이, 돈 있는 자들의 사치스러운 ‘미용 전리품’으로 전락한 셈이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밥상머리 화두는 단연 주식이었다. ‘떡상’으로 시작해 부동산으로 갈아탈 출구 전략까지, ‘장밋빛 흥분’에 취해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반기를 장악한 마운자로와 상반기의 주식 열풍은 묘한 공통점이 있다. 성실한 노동과 저축이라는 지난한 과정을 건너뛰고 ‘한 방’을 노린다는 점이다. 노동 없이 자본의 팽창만을 좇던 ‘벼락부자’의 꿈이, 땀방울 없이 피하주사로 지방을 태우려는 ‘뼈말라’의 욕망으로 모양만 바뀐 채 고스란히 옮겨왔을 뿐이다.
 
결국 상반기를 뜨겁게 달군 주식 광풍과 하반기의 비만약 열풍은 정확히 같은 뿌리를 공유한다. 땀 흘려 가꾸는 몸도, 차곡차곡 모으는 자산도 미련한 것으로 치부되는 ‘숏컷(Shortcut) 중독’ 사회의 자화상이다. 체중계의 숫자도, 통장 잔고도 시간과 노력을 갈아 넣는 대신, 요행과 편법으로 단숨에 도달할 지름길만 찾고 있다. ‘빨리빨리’의 얄팍한 지름길 위에서 정직하게 땀 흘리던 동네 헬스장들은 문을 닫고, 진짜 치료가 필요한 이들은 소외된다. 하지만 과정 없는 결과가 영원할 수 있을까. 테마주 광풍에 올라타 일확천금을 노리다 끝내 깡통 계좌를 차고 마는 개미들의 서글픈 결말을 보며, 주사 한 방으로 빚어낸 인공적 말라깽이들의 위태로운 내일이 문득 겹쳐 보인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
윤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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