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을 준비하면서 설레는 순간 중 하나가 환전할 때 일 텐데요. 이번 휴가를 앞두고는 오히려 고민이 많았습니다. 현지 통화로 바로 결제할 수 있는 트래블카드가 있어 굳이 현금이 필요 없을 것 같으면서도, 지난해 미국 여행에서는 팁을 주거나 현금만 받는 곳이 더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년 만에 다시 가보니 현금을 쓸 일은 눈에 띄게 줄어 있었습니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여행의 거의 모든 과정이 스마트폰 안으로 들어와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가상의 여행객들이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셀프 백드랍을 이용해 수하물을 부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탑승권은 디지털 패스로 핸드폰에 저장됐고, 공항에서는 키오스크로 직접 수하물 태그를 출력해 짐을 부쳤습니다. 한국 공항만 해도 직원이 있는 창구와 셀프 드롭 창구가 나뉘어 있어서 그리 새로운 그림은 아닙니다만, 이번에 이용한 캐나다와 미국 공항에서는 사람 대신 기계만 줄지어 있는 휑한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문제는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였습니다. 제 짐을 부치려는데 컨베이어벨트가 멈췄습니다. 옆 기계도 마찬가지였지만 주변에는 직원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한참 뒤 지나가던 직원이 ID카드를 태그한 뒤에야 기계가 다시 움직였습니다.
엄마의 캐리어를 부칠 때는 수하물 태그가 인식되지 않았습니다. 직원을 다시 찾아봤지만 공항은 조용하기만 했습니다. 결국 몇 분 동안 캐리어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며 사투를 벌인 끝에 겨우 짐을 부칠 수 있었습니다.
엄마가 말했습니다.
"그래도 너랑 같이 왔으니 망정이지."
저에게는 몇 번 눌러보면 해결되는 일이었지만,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여행의 시작부터 하나의 장벽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행 내내 비슷했습니다. 공항에서 도심까지 오가는 셔틀버스 위치는 이메일로 받은 링크를 통해서만 확인 가능했고, 전망대에서 찍은 사진은 QR코드를 스캔하자 바로 휴대전화에 저장됐습니다. 비행 중에도 휴대전화에는 목적지까지 남은 시간이 실시간으로 표시됐고, 기내 와이파이에 연결하니 하늘 위에서도 카카오톡을 주고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행은 분명 훨씬 편해졌습니다. 현금이 없어도 결제할 수 있고, 종이 표가 없어도 이동할 수 있습니다. 직원을 찾아 물어보지 않아도 스마트폰 하나면 대부분 해결됩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낯선 언어나 길 찾기가 해외여행의 어려움이었다면, 이제는 앱과 QR코드, 키오스크를 얼마나 능숙하게 다루느냐도 여행 능력의 일부가 된 것 같습니다.
무인화된 공항을 보면서는 또 다른 생각도 들었습니다. 기계가 사람의 일을 대신하면서 처리 속도는 빨라졌지만 정작 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을 청할 사람도 함께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여행 내내 엄마는 제가 스마트폰으로 이것저것 하는 모습을 보며 하나씩 배워두려고 했습니다. 다음 달에는 아빠와 두 분이서 호주 여행을 가기 때문입니다.
"배워둬야 호주 가서 안 헤매지."
누군가에게는 몇 번의 터치로 끝나는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여행을 망설이게 만드는 새로운 장벽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의 말을 듣고 보니 해외여행의 준비물도 하나 더 늘어난 것 같습니다.
이제는 여권만 챙기면 되는 게 아니라, 스마트폰을 다룰 줄 아는 능력까지 챙겨야 하는 시대가 됐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