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생명보험 시장은 이제 성장의 막바지에 다다랐다." 보험업계를 취재하면서 늘상 들어온 말입니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이른바 '불장'이 이어지면서 보험상품보다 주식으로 눈을 돌린 소비자도 적지 않았습니다. 고령화와 저출생으로 인구구조 변화까지 빨라지면서 소비자의 관심이 전통적인 종신보험에서 노후를 대비한 연금보험이나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투자상품으로 한창 이동했다는 분석도 나온 바 있습니다.
이달 1일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6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올해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21.6%로 집계됐습니다. 향후 계속 증가해 오는 2036년에 30%, 2050년에는 4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동안 이런 고령화 현상은 생보 시장에서 새로운 고객층이 줄어드는 근거로 주로 해석돼 왔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많은 혁신은 시각을 바꾸는 데서 시작된다지 않습니까. 반대로 보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고령화는 보험금 지급과 의료·간병비 증가라는 부담을 키우는 동시에 길어진 은퇴 생활을 뒷받침하기 위한 새로운 금융 수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찬스'입니다.
이 점에서 데이비드 싱클레어 영국 국제장수센터(ILC) CEO도 고령화를 '비용과 위험'이 아닌 '새로운 경제적 기회'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최근 열린 '2026 KIDI 보험미래포럼'에서 '100년 생명주기를 위한 재설계 : 글로벌 사례 및 한국 보험산업의 미래를 위한 제언'을 주제로 발표한 것입니다.
싱클레어 CEO는 한국을 단순한 '성숙 시장'으로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성장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고부가가치 시장이라고 봤습니다. 인간의 평균수명이 늘어날수록 은퇴 이후 보내야 할 시간도 길어집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연금뿐 아니라 건강보장과 장기 자산관리, 자산 승계와 상속 설계 등에 대한 수요도 함께 커질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생명보험사 역시 기존의 '보장 제공자'에서 벗어나 고객의 생애주기 전반을 관리하는 장기 재무 파트너로 역할을 넓힐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특히 인공지능(AI)과 생명공학의 발전 역시 기존 '장수리스크'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꿔 줄 포인트로 짚었습니다. 건강 상태와 기대수명을 더욱 정교하게 예측하고 관리할 수 있게 되면 보험사도 장수리스크를 단순히 오래 생존하면서 발생하는 비용으로만 보지 않게 됩니다. 질병 예방, 건강관리, 자산관리 서비스를 결합한 새로운 시장으로의 접근이 가능한 셈입니다.
여기서 출발해 한국에서 시작한 보험사 건강관리 서비스가 해외로 확산된 사례도 있습니다. 메트라이프생명의 '360Health'는 AI 헬스 체크, 메타버스 기반 비대면 심리 상담 등 혁신적 기능을 적용한 종합 건강관리 서비스입니다. AI 서비스 추천 등을 통해 다양한 고객 편의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 한국의 높은 자산 축적 수준도 보험산업의 기회 요인으로 꼽히고는 합니다. 한국 가계가 보유한 금융자산은 국내총생산(GDP)의 약 2배를 웃도는 수준으로 쌓여 있습니다. 기자는 한 푼도 없다지만, 부동산, 금융자산, 퇴직자산 등 다양한 자산을 보유한 소비자가 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보험에 대한 요구가 기존의 위험 보장에서 은퇴 준비, 자산관리, 상속·승계, 건강관리 등을 결합한 종합 금융솔루션으로 변화하는 중입니다.
같은 현상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현상이 가진 의미는 달라집니다. 스스로 한계를 정하고 그 선을 끝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그 선에서 끝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해진 선 너머를 바라보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길이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자도 오늘부터 '안돼요' 말고 '일단 해보겠습니다'로 생각과 태도를 고쳐보기로 다짐했습니다. 혹시 모릅니다. 기자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숨겨진 재능을 가지고 있을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