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은행에 볼일이 있다면 출근길에 잠깐 들르기가 지금보다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오전 9시에 열리던 은행 문이 30분 늦게 열리기 때문입니다. 모바일뱅킹으로 웬만한 금융 업무를 처리하는 시대라지만, 은행 창구가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얘기가 다릅니다. 가뜩이나 주변에서 은행 점포를 찾기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이용할 수 있는 시간마저 줄어드는 셈입니다.
금융권 노사는 지난 28일 산별중앙교섭을 잠정 타결했습니다. 합의안에 따르면 내년 4월 이후 은행 영업점 개점 시간은 오전 9시에서 9시30분으로 늦춰집니다. 문을 닫는 시간은 오후 4시로 그대로입니다. 코로나19 같은 외부 요인이 아닌 노사 합의로 은행 영업시간이 상시 단축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은행원들의 사정도 있습니다. 오전 9시부터 고객을 맞으려면 그보다 일찍 출근해 업무를 준비해야 했습니다. 실제 출근 시간과 공식 영업시간 사이에 간극이 있었던 겁니다. 여기에 모바일·인터넷뱅킹 등 비대면 거래가 늘어난 금융환경 변화도 이번 합의에 영향을 미쳤다는 게 은행권의 설명입니다.
하지만 고객 입장에서는 단순한 '30분'으로만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은행 문을 여는 시간이 늦어지는 사이 정작 찾아갈 은행도 계속 사라지는 추세입니다.
4대 은행의 국내 영업점은 올해 2분기 기준 2703곳입니다. 2022년 2943곳과 비교하면 4년 사이 240곳이 줄었습니다. 우리은행도 내년 1월 서울과 경기, 인천, 울산, 경남 등에 있는 영업점 10곳을 인근 점포로 통합할 예정입니다. 지난 7월 37곳을 통폐합한 데 이은 추가 점포 축소입니다.
젊은 세대에게 은행 점포 하나가 사라지고 문을 30분 늦게 여는 것은 별일 아닐 수 있습니다. 송금부터 예·적금 가입, 대출 신청까지 스마트폰 하나로 해결할 수 있어서입니다. 하지만 앱 사용이나 비대면 본인인증이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에게 은행 창구는 여전히 중요한 금융 통로입니다. 대출 상담처럼 직접 직원을 만나 처리해야 할 일이 있는 고객도 마찬가지입니다.
점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영업시간까지 짧아지면 고령층이 많이 찾는 시간대에는 대기시간이 더 길어질 수 있습니다. 수도권보다 점포가 적은 지방에서는 가까운 은행 하나가 사라지는 것만으로도 금융 접근성에 적지 않은 차이가 생길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습니다.
물론 은행원의 근무환경을 개선하는 것과 소비자 편의를 반드시 반대편에 놓을 필요는 없습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비자들의 불편함을 개선시킬 뚜렷한 방안을 찾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금융당국은 공동점포와 이동점포를 운영하고 우체국 등을 활용한 은행대리업도 시범 도입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이용할 수 있는 지역과 업무가 제한적이어서 기존 영업점을 온전히 대신하기에는 부족합니다. 모든 고객이 디지털로 이동할 때까지는 대면 창구의 역할도 남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은행 점포가 예전처럼 다시 늘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비대면 금융이라는 흐름을 되돌리기도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효율화라는 이유만으로 점포도, 이용시간도 계속 줄이는 것이 답일 수는 없습니다. 영업시간 단축이 단순한 근무시간 조정에 그치지 않으려면, 그만큼 줄어든 금융 접근성을 어디서 어떻게 메울지에 대한 답도 함께 내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금융노조 총파업 대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진희 기자 lj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