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크게 작게 작게 메일
페이스북 트윗터
보험금 조사에도 '내 편'이 필요해
입력 : 2026-09-28 오후 2:44:57
독특한 직업을 주인공의 특징으로 내세운 게임이 있습니다. '오브라 딘 호의 귀환(Return of the Obra Dinn)'이라는 게임입니다. 
 
지난 1807년 영국 동인도회사 런던 사무실에서 일하는 주인공은 보험금 조사 업무를 담당합니다. 어느 날 실종됐던 상선 '오브라 딘' 호가 해안에 다시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일종의 '손해사정사'로서 사건의 전말을 조사하게 됩니다. 주인공은 약 60명에 달하는 승선자의 신원과 사고 원인을 밝혀내야 합니다. 사망자의 사고 시점을 들여다볼 수 있는 '특별한 회중시계'를 사용해 추리하는 1인칭 미스터리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아쉽게도 현실의 손해사정에는 이런 멋진 회중시계가 없습니다. 보험사고가 발생하면 약관, 진단서, 사고기록 등 자료만을 토대로 보험금 지급 여부와 규모를 판단해야 합니다. 보통 보험금 청구 후 보험사가 현장심사를 통보하면, 대부분의 경우 보험사 측 손해사정사인 '고용손해사정사'가 조사를 실시합니다.
 
보험금 판단은 언제나 복잡합니다. 같은 질병이나 사고라도 가입한 상품 약관, 사고 경위, 의료기록 등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손보협회 공시에 따르면 2025년 하반기 삼성화재·현대해상·DB손해보험·KB손해보험·메리츠화재 등 5개 손보사 부지급 건수는 6만5678건입니다. 전체 청구건수(498만2711건) 대비 부지급 비율은 1.32%입니다. 보험금 부지급 자체가 보험사의 잘못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약관상 보장하지 않는 사고나 면책사유 등에 해당한다면 보험사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 정당한 판단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험금을 부당하게 지급하지 않거나 적게 지급한 사실도 종종 보입니다.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감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2년부터 올해 7월까지 금감원 보험사 검사 과정에서 적발된 보험금 부지급 및 과소지급 건수는 총 961건, 전체 부지급·과소지급 보험금 액수는 총 5억4840만원입니다.
 
소비자와 보험사 사이에는 상당한 정보와 전문성의 격차가 존재하는데, 보험에 관한 전문지식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소비자가 보험사의 판단 근거를 스스로 검토하기는 쉽지 않은 구조입니다. 특히 소비자가 보험금 지급 여부가 결정된 뒤 늦게 이의를 제기하는 것과 보험금 지급 여부 조사 단계부터 소비자 측 전문가가 참여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때 소비자가 활용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가 있습니다. 바로 '소비자 선임권' 제도입니다. '보험업법' 제185조에 근거해 보험금 청구자가 독립 손해사정사를 비용 없이 선임해 단독 조사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이 제도는 보험사 측 손해사정이 갖는 구조적 이해상충 우려를 줄이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보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손해평가를 통해 보험소비자 권익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독립손해사정사 선임 비용은 보험사가 전액 부담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언제' 선임하느냐입니다. 소비자 선임권 적용 기한은 안내 후 3영업일입니다. 보험금 청구 후 보험사가 '현장심사가 필요하다'고 안내한 시점부터 행사할 수 있습니다. 3영업일 기한 안에 소비자가 제도 사용 의사 표시를 하지 않으면 보험사 측 손해사정으로 진행되는 것이 통상적입니다. 또 실손해액 평가형 손해보험에만 적용됩니다. 실손의료보험, 배상책임보험, 화재·누수·재산손해 등의 재물보험, 공장·시설물 손해보험 등이 대상입니다. 
 
독립손해사정사가 작성한 손해사정서는 보험사의 지급 여부·금액 결정에 강력한 참고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보험사가 무조건 이 손해사정서를 따라야 하는 것은 또 아닙니다. 보험사가 손해사정서를 부분 또는 전부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결국 분쟁조정·소송 절차로 연결됩니다.
 
영업 현장에서는 두 손해사정사를 종종 '창'과 '방패'에 비유합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험금 지급을 뒷받침하는 독립손해사정사가 창이라면, 보험사 입장에서 불필요한 보험금 누수를 막는 고용손해사정사는 방패라는 비유인데요. 하지만 아무리 좋은 창도 쓰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소비자 선임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도가 있어도 소비자가 존재를 모르거나 행사할 시기를 놓치면 사실상 없는 권리나 다름없습니다. 나중에 보험금 청구할 때 참고하시기를 바랍니다.
 
기자가 지난 27일 '오브라딘 호의 귀환'이라는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장선영 기자 line0@etomato.com
 
장선영 기자
SNS 계정 : 메일


- 경제전문 멀티미디어 뉴스통신 뉴스토마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