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동지훈 기자] 국회 본회의장은 정치의 승패가 갈리는 곳입니다. 한 표의 차이로 법안의 운명이 뒤바뀌고, 정당이 사활을 걸고 추진한 법안이 본회의 문턱을 넘느냐 넘지 못하느냐에 따라 여·야의 희비가 엇갈립니다. 어떤 법안에는 당의 명운이 걸리고, 어떤 표결에는 한 정치인의 정치적 미래가 걸리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회의장은 승부의 공간입니다.
본회의장이 단순한 정치적 전장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곳에서 다뤄지는 것은 정당이나 정치인의 사적 이해가 아니라 국민의 삶과 직결된 법안입니다. 국회의원이 본회의장에 앉아 한 표를 행사하는 이유도 결국은 민의를 입법으로 구현하기 위해서입니다.
김민석 민주당 대표가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보고 있던 수첩. (사진=연합뉴스)
그런 본회의장에서 지난 9일 흥미로운 장면이 포착됐습니다. 김민석 민주당 대표의 수첩에 적힌 서울시장 후보군의 이름이 사진으로 보도됐습니다. 그 명단에는 김 대표가 불과 얼마 전 전당대회에서 당대표직을 놓고 경쟁했던 정청래 전 대표의 이름도 있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여러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김 대표가 정 전 대표를 당의 소중한 자산으로 보고 있다는 신호로 읽을 수 있습니다. 서울은 민주당으로서도 결코 쉽게 내줄 수 없는 최대 격전지 가운데 하나입니다. 전직 당대표이자 당내에서 상당한 지지 기반을 가진 정 전 대표를 서울시장 후보군에 올렸다는 것은 경쟁자를 배제하기보다 선거 승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정반대의 해석도 가능합니다. 서울시장 선거는 민주당에도 결코 만만하지 않습니다. 후보로 나선다고 해서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선거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당대표 경선에서 맞붙었던 경쟁자를 어려운 선거에 내보내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도 가능합니다. 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정치적 타격을 입는 쪽은 후보 본인일 뿐 아니라 당내 경쟁자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정치의 세계에서 경쟁자를 가장 효과적으로 제압하는 방법은 반드시 경쟁자를 당장 밀어내는 것만은 아닙니다. 경쟁자가 스스로 승부를 걸도록 만들고 그 승부의 결과에 정치적 책임을 지게 하는 것도 하나의 전략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수첩 사진을 두고 '포용'이라고 읽을 수도 있고, '정치적 승부수'라고 읽을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누군가는 술수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 해석이 맞는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는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회의장은 분명 정치적 승부의 공간입니다. 그러나 본회의장에서 이뤄지는 표결까지 정치인의 사적인 승패 계산으로만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국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정당 간 경쟁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뜻을 법과 제도로 구현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에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경쟁자를 이기는 전략도 필요하고,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계산도 필요합니다. 정치적 영민함 역시 정치인의 중요한 능력입니다.
영민한 정치와 정정당당한 정치는 같은 말이 아닙니다. 만약 본회의장에서 이뤄지는 정치적 행위에 개인의 정치적 이해가 앞서고, 민의를 반영해야 할 입법의 장이 경쟁자를 견제하거나 정치적 타격을 입히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것이 실제 의도였는지는 별개의 문제지만 적어도 국민에게 그렇게 비칠 수 있는 정치라면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는 결국 국민 앞에서 하는 일입니다. 당대표 경선에서 경쟁했던 사람을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될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경쟁자를 포용해 당의 외연을 넓히는 정치라면 평가받을 만합니다. 반대로 경쟁자를 정치적으로 소모시키기 위한 계산이었다면 영리할지는 몰라도 박수받을 정치는 아닙니다.
정치에서 승패는 중요합니다. 선거에서 이겨야 정책을 추진할 수 있고, 표결에서 이겨야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승리가 좋은 정치인 것은 아닙니다. 본회의장의 한 표가 정당의 승패를 가를 수 있듯 정치인의 한 수가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수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겠죠.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이기려 하느냐일 것입니다. 국민을 위한 승리인지, 당을 위한 승리인지, 아니면 경쟁자를 넘어서는 개인의 승리인지.
9일 본회의장에서 찍힌 한 장의 수첩 사진은 그 질문을 던졌습니다. 정치가 승부라면, 승리의 방식에도 품격이 있어야 합니다.
동지훈 기자 jeeho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