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발표한 내년도 예산안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단연 162조3000억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 신설입니다. 반도체 호황 등으로 늘어난 세수를 모아두었다가 불황에 대비하는 이른바 ‘재정 저수지’를 만들겠다는 구상입니다. 미래 성장동력 확보와 청년 지원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재정 전문가들과 정치권 안팎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습니다.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국회 통제를 벗어나는 정부의 막대한 재량권입니다. 일반회계 예산과 달리 기금은 국회의 별도 심의 없이도 정부가 계획을 쉽게 변경할 수 있다는 허점이 있습니다. 160조원이 넘는 거대 기금이 국회의 엄격한 감시망을 피해 사실상 정부 입맛대로 주무를 수 있는 '쌈짓돈'으로 전락할 위험에 노출된 셈입니다.
필요할 때마다 기금에서 여윳돈을 꺼내 쓰는 구조 역시 위험천만합니다. 이는 사실상 '상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쓰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국가 재정 운용의 엄정함을 무너뜨릴 뿐만 아니라, 여유 세수가 생겼을 때 눈덩이처럼 늘어난 나랏빚부터 우선 갚아야 한다는 재정 건전성의 기본 원칙에도 정면으로 어긋납니다.
정부는 사후 보고를 강화하겠다고 당부하지만, 이미 넓어진 정부의 재량권은 재정의 투명성을 해치는 큰 구멍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국회의 철저한 통제와 엄격한 절차가 담보되지 않는 거대 기금은 미래를 위한 저수지가 아니라 국가 재정을 흔드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오른쪽)이 지난달 2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7년도 예산안과 2026~2030년 국가재정운용 계획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