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상 '입추'지만 연일 폭염이 이어지는 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더 스피어에 현재 온도가 표시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입추가 지났다. 달력은 가을을 가리키지만 햇볕은 여전히 여름이다. 한낮에 잠깐만 걸어도 땀이 난다. 그래도 요즘은 바람이 다르다. 아주 조금 날카롭다. 뜨거운 햇살에 얼굴을 찌푸리다가도 시원한 바람이 스치면 잠시 더위를 용서하게 된다. 더위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견딜 만한 순간이 생긴 것이다.
폭염도 그렇다. 기온을 단숨에 낮출 수는 없다. 그렇다고 모두가 더위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릴 수도 없다. 그래서 여름이면 그늘막이 생기고, 무더위쉼터가 문을 열고, 건설현장에서는 작업을 멈추는 시간이 마련된다. 더위를 없애지는 못하지만 사람이 그 시간을 버틸 수 있도록 만드는 장치들이다.
이런 것들은 거대한 해결책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늘막 하나가 기후를 바꾸지도 못하고, 잠깐 쉬는 시간이 폭염을 끝내지도 않는다. 하지만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몇 분간 머물 그늘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도 비슷할지 모른다. 모든 문제를 당장 없애는 것은 어렵다. 주거비도, 돌봄도, 기후위기도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결될 때까지 사람들에게 견디라고만 할 수도 없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큼, 해결되는 동안 사람들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일도 필요하다.
입추가 왔다고 여름이 끝난 것은 아니다. 다만 가끔 바람이 분다. 여전히 덥지만 그 바람 하나로 잠시 걸을 만해진다. 세상을 바꾸는 일도 어쩌면 그런 것인지 모른다. 당장 여름을 끝내지는 못하더라도, 누군가가 조금 덜 지치게 만드는 일을 늘려가는 것이다.
이혜지 기자 zizi@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