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로 폐교가 결정된 서울 성동구 성수공업고등학교 모습. (사진=뉴시스)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어렵다. 어떤 기술이 등장할지, 어떤 산업이 성장할지,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래서 정책을 만드는 일 역시 쉽지 않다. 다만 모든 미래가 불확실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이미 숫자로 보이는 미래도 있다.
학령인구 감소가 그렇다. 1990년대만 해도 대학은 늘어나는 쪽에 가까웠다. 김영삼 정부는 5·31 교육개혁을 통해 대학의 설립과 운영 자율화를 추진했고, 1996년에는 대학설립준칙주의가 시행됐다. 일정한 기준만 갖추면 대학을 설립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춘 것이다. 당시에는 더 많은 대학과 더 많은 교육 기회를 만드는 것이 시대의 요구였다.
시간이 흘러 상황은 달라졌다. 이제는 대학을 더 만드는 것보다 어떻게 줄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정부는 8월부터 사립대학구조개선법을 시행한다. 경영위기에 놓인 사립대의 구조개선과 해산을 지원하고, 폐교 과정에서 학생과 교직원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도 마련했다. 한때 대학을 늘리기 위해 만들었던 제도가 이제 대학을 정리하기 위한 제도와 마주하게 된 셈이다.
물론 과거의 정책을 지금의 기준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당시에는 당시의 필요가 있었고, 대학의 확대가 교육 기회의 확대라는 의미도 있었다. 문제는 정책의 방향보다 그 정책이 얼마나 먼 곳까지 바라보고 만들어졌느냐에 있을지 모른다.
정책에는 당장의 효과가 필요하다. 사람들의 표를 얻어야 하는 정치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정책의 결과는 임기보다 오래 남는다. 한 번 만들어진 대학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한 번 늘어난 시설과 조직에는 수많은 사람의 삶이 얽힌다.
미래를 정확하게 맞히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이미 보이는 변화까지 외면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미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어떤 미래는 통계 속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그 미래가 현실이 된 뒤에야 대책을 찾는 것과, 아직 오지 않았을 때 준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정책입안자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를 맞히는 능력보다 어쩌면 이미 정해져 가는 미래를 조금 일찍 바라보는 눈인지도 모른다.
이혜지 기자 zizi@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