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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으로 칠하면 39도가 귀여워지나요
입력 : 2026-08-04 오후 3:59:01
뉴스도 콘텐츠가 되는 시대입니다. 넘쳐나는 미디어 속에서 정보 제공자는 시청자의 관심을 붙들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합니다. 한 날씨정보업체 유튜브 채널은 최근 AI 기상캐스터를 도입했습니다. 단순히 제작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라고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AI 캐스터의 선정적인 옷차림이 날씨보다 더 큰 관심을 끌었기 때문입니다. 한 종합편성채널에서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하츄핑이 기상캐스터로 등장했습니다. 정보 제공자의 가장 큰 무기가 신뢰성이라는 생각은 이제 고루해진 듯합니다. 전달자의 책무 가운데 하나로 ‘이목 끌기’가 추가됐기 때문입니다.
 
이 흐름을 무작정 막을 수도, 막을 필요도 없습니다. 눈길을 끄는 뉴스 역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여도 괜찮을까요. 소설가 김애란은 최근 방송 대담에서 인간과 AI의 결정적 차이로 ‘망설임’을 꼽았습니다. 상대의 감정과 처지를 헤아리느라 말을 아끼고 삼키는 순간이 기술에게는 없고 인간에게는 있다는 것입니다. 하츄핑은 밝은 목소리로 손부채질을 하며 낮 최고기온이 39도까지 오르고 폭염특보가 이어진다고 전했습니다. 영상에는 “분홍색으로 칠하면 39도가 귀여워지느냐”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폭염특보는 말 그대로 중대한 피해가 예상될 때 발령하는 경고입니다. 실제 최근 광주·전남에서는 온열질환자가 120명이나 발생했고, 온열질환 추정 사망자도 나왔습니다. 닭과 돼지 등 가축 1만7700여마리가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폐사하기도 했습니다.
 
AI도, 캐릭터도 39도가 얼마나 더운지 모릅니다. 오로지 인간만이 숨이 턱턱 막히는 무더위를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하츄핑을 연기한 사람도 인형 탈 안에서는 무더웠겠으나 프로 정신을 발휘해 산뜻한 보도를 마쳤습니다. 하지만 이런 날씨에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산뜻한 진행일까요. 체감은 단순한 감각에 그치지 않습니다. 같은 더위를 견디는 타인의 처지를 헤아리게 만드는 출발점이 됩니다. 인간이 기술보다 나은 점이 망설임이라면, 뉴스에 필요한 인간다움도 바로 그 망설임에서 시작됩니다. 39도라는 숫자 앞에서 잠시 멈춰, 뙤약볕 아래 일하는 사람과 에어컨 없는 방의 노인, 쓰러지는 가축을 떠올리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숫자 너머의 곤란과 괴로움을 십분 짐작해 보다 더 공감 가는 보도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이 보도에 남아 있어야 할 이유일 것입니다.
 
극장판 애니메이션 '사랑의 하츄핑' 한 장면(사진=연합뉴스)
이하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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