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1926년 11월 파시스트 무솔리니 정권의 공판 검사는 안토니오 그람시에게 20년형을 구형하며 이렇게 소리쳤다. “20년 동안 우리는 이 두뇌가 기능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그의 사상 활동을 장기간 막아야한다는 의미로 이탈리아 공산당의 수장이자 비범한 사상가였던 그람시는 어두운 철창 속에 감금됐다. 파시즘은 그의 영향력을 완전히 지워버릴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감옥에서도 그람시의 정신은 막을 수가 없었다.
1937년 46세, 옥고로 악화된 지병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는 33권의 공책 약 3000쪽에 달하는 기록을 남겼다. 바로 20세기 서구 사상사의 대반전을 이끈 <옥중수고>다.
2026년7월20일 서울 광화문사거리에서 시민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026년7월20일 서울 광화문사거리에서 시민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어두운 철창도 가두지 못한 사상”
그람시의 <옥중수고>는 단순한 서구 마르크스주의 문헌만 내재된 것이 아니다. ‘공산주의’, 이념적 용어의 강한 비하적 표현인 ‘빨갱이’로도 치부하기에는 지독한 육체적 고통, 검열관의 감시, 그리고 자본주의와 파시즘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 한 지식인이 벌인 처절한 지적 진지전의 결과물이다.
검열의 눈을 피하기 위해 ‘마르크스주의’ 대신 ‘실천의 철학’이라는 우회적 언어를 써야 했던 그는 당대 좌파진영을 지배하던 교조적 경제결정론을 사정없이 비판했다.
“경제적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단선적인 공식만으로는 왜 대중이 혁명이 아닌 파시즘에 열광하는지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옥중수고>를 통해 얻은 대답은 바로 ‘헤게모니(Hegemony)’였다.
지배 계급은 물리적 강제력만으로 통치하지 않는다. 언론, 교육, 종교, 문화라는 일상 영역을 통해 피지배층의 ‘자발적 동의’를 이끌어내 권력을 유지한다고 봤다. 그가 제시한 혁명은 단번에 국가 권력을 제압하기보다 시민사회라는 진영 사이에서 대중 의식을 바꿔나가는 문화적 헤게모니 투쟁을 말하고 있다.
레닌은 러시아 혁명을 통해 국가 권력을 장악하며 소련을 공산주의 체제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지만 ‘왜 이탈리아에서는 통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물음의 답이기도 하다. 그람시는 공산혁명이 실패한 이유를 ‘의식의 지배’에 있다고 분석했다. 정치권력을 얻기 전에 먼저 사람들의 가치관과 상식, 문화적 공감대를 바꾸는 ‘문화적 헤게모니’를 말이다.
이탈리아에서 공산혁명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이후 그의 사상은 서구 좌파의 전략과 문화·교육 분야의 담론에 큰 영향을 미치며 오늘날까지도 중요한 사상으로 연구되고 있다.
2026년7월12일 서울 서초구 반포한강공원에서 시민들이 풍경을 감상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성으로 비관, 의지로 낙관”
68혁명 세대와 신좌파 지식인들에게 그람시는 정통 스탈린주의와 구별되는 서구 마르크스주의를 대표하는 사상가로 받아들여졌다. “지성으로 비관하고 의지로 낙관하라”는 그의 유명한 명언은 절망에 빠진 진보적 지식인들의 안식처였다. 대중의 삶 속에서 뿌리내리는 ‘유기적 지식인’을 강조했던 그의 사상은 신좌파 운동과 현대 문화연구의 마르지 않는 샘물이 됐다.
그러나 <옥중수고>를 일종의 ‘민주적 마르크스주의’의 완성판으로만 추앙하는 것은 그람시의 본모습을 절반만 본 것이다. 감옥에 갇히기 전 이탈리아 공산당 창립을 주도하고 공장위원회 운동을 이끌었던 실천가로서의 그람시는 온화한 자유주의자가 아니었다. 규율과 조직, 그리고 전위당의 역할을 누구보다 강조했던 레닌주의자였다. <옥중수고> 속 진지전 개념은 기성 체제와의 타협이나 온건한 사회민주주의로의 후퇴가 아닌 서구 자본주의를 무너트리기 위한 사상 전략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람시가 옥중에서 남긴 사유의 파편들은 20세기 후반 정치학과 문화이론, 그리고 후기식민주의 연구에 이르기까지 서구 사상계를 흔들었다. 정치는 단순히 표를 얻고 제도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가치와 문화 속에서 살아갈 것인가’를 둘러싼 동의의 과정을 포함한다는 사실을 그는 누구보다 통찰했다.
그를 옥사로 몰아넣었던 무솔리니의 파시즘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그람시의 사상은 감옥 밖에서 오늘날까지 살아 숨 쉬고 있다.
이념을 떠나 그람시는 영웅의 신화도, 한낱 패배자의 변명도 아니다. 그는 권력은 어떻게 유지되는가, 문화는 어떻게 사람들의 의식을 형성하는가라는 질문을 끝까지 파고든 사상가였다. 그의 서늘한 통찰은 한 시대를 넘어 오늘날에도 권력과 문화의 본질을 다시 묻게 하는 살아 있는 문제의식으로 남아 있다.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judi@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