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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자전거
입력 : 2026-07-31 오후 12:59:48
“반도체는 달리는 자전거와 같다. 페달 밟기를 멈추면 자빠진다. 그 사이 다른 자전거에 추월당하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사진=연합뉴스)
 
얼마 전 국내 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을 이같이 비유했다. SK하이닉스가 나스닥에 상장해 투자를 유치하는 것도, 삼성전자가 국내를 넘어 미국 테일러시에서까지 공장을 짓는 것도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페달을 밟는 일이다. 인공지능(AI) 발전 속도가 가팔라지면서 요구되는 반도체 성능도 빠르게 고도화됐고, 기업들의 투자와 생산능력 확대 경쟁 역시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넘치는 수요에 대응하는 것을 핵심 과제로 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9일 실적 발표 후 컨퍼런스콜에서 “기술 경쟁력뿐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물량을 적시에 공급할 수 있는 안정적인 공급 능력이 사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며 “견고한 고객 수요와 중장기 성장 기회에 대응하고자 성장 생산 역량 확충을 위한 투자 계획을 지속하는 중”이라고 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용인·호남에 이어 해외 추가 투자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이는 고객들이 대기표를 뽑고 줄을 설 정도로 공급이 부족한 상황을 의식한 행보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자 가격은 오르고 고객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일부 기업(애플)은 중국 CXMT로 눈을 돌리고 있고, 미국 정부가 무역적자 해소를 명분으로 1980년대 일본과의 ‘플라자 합의(엔화 가치를 강제로 올려 일본 제품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린 환율 합의)’, 미·일 반도체협정(일본 반도체에 원가 공개 및 점유율 제한을 건 협정)처럼 시장에 인위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 회장 역시 “칩플레이션이 심화하면 지정학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글로벌 고객사에 제품을 적기에 공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핵심 공급망인 미국 시장에서 공급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중국의 추격도 빨라지고 있다. CXMT는 범용 D램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다. HBM 등 서버용 D램보다 수익성은 낮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제조 난도가 낮은 범용 제품의 출하량을 대폭 늘린 것이다. 국내 기업들이 서버용 메모리에 생산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점 역시 CXMT에는 글로벌 고객을 확보할 기회로 작용했다.
 
나아가 중국은 서버용 D램 시장 진출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기술적으로는 HBM3 양산이 가능한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알려졌고, 심자외선(DUV) 노광장비 등 핵심 제조 장비도 하나둘 자체 개발하고 있다. CXMT는 최근 자국 증시 상장을 통해 약 14조원의 투자 재원을 확보했으며, 이를 생산시설 확충에 투입할 계획이다.
 
결국 AI 시대 반도체 산업은 기술력과 생산 역량을 동시에 확보하는 기업이 주도권을 가져가는 싸움으로 변하고 있다. 중국은 범용 D램을 발판으로 기술력을 축적하고 있고, 글로벌 고객들은 언제든 공급망 다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 2분기 합산 영업이익 150조원. 역대 최대 실적을 거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더욱 페달을 밟아야 하는 이유다.
 
안정훈 기자 ajh76063111@etomato.com
안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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