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다르다고 합니다. 지금 SK하이닉스가 딱 그 꼴입니다. ADR 상장은 유상증자로 기존 주주 가치를 희석하는 부담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최태원 회장을 비롯해 회사는 미국 시장 ADR 상장으로 한국 본주의 저평가를 해소하는 효과를 홍보하며 여론을 형성했습니다. 하지만 ADR 상장 후 본주는 급락했고 ADR만 오르다가, 그 ADR도 본주 급락 여파로 공모가를 밑돌게 됐습니다.
그리고 맞은 첫 실적 발표일, 시장은 그나마 주주가치 보호 대책을 기대했지만 회사는 태평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이미 ADR 상장으로 40조원의 현금을 챙겼고 증시 변동폭은 나몰라라 하는 것일까요. 이런 주식은 국내 자본 시장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립니다. 주가가 시스템리스크 수준으로 폭락하는데도 회사가 방관하면 대체 누가 한국 시장에 투자할까요. 외국인은 물론, ‘국장탈출은 지능순’ 서학개미 역시 뒤도 안 보고 미장에 매달릴 것입니다.
신뢰를 무너뜨린 대장주의 책임이 큽니다. ADR과 본주 간 괴리는 여전히 30~50% 수준으로 벌어져 있습니다. 본주→ADR 전환은 규제 절차 때문에 수주가 걸리고, 발행 한도(전체 주식의 2.5%) 제약으로 차익거래도 제한적입니다. 그럼에도 최근 컨퍼런스콜에서 회사는 “아직 구체적 계획 없음”이라는 답변만 내놓았습니다. 이는 시장의 실망 매물을 키우며 주주 신뢰를 더욱 흔들었습니다.
상장 당시 내세운 ‘저평가 해소’라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ADR 발행량 확대, 규제 협의, 예탁기관과의 협력 등 회사가 할 수 있는 조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동적인 태도는 주주가치를 방치하는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습니다.
SK하이닉스가 확보한 40조원의 자금을 어떻게 활용해 주주가치를 제고할지, ADR 괴리를 어떻게 줄일지에 대한 명확한 로드맵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ADR 상장은 단지 회사의 자금 확보 수단으로만 남고, “주주를 ATM으로만 본다”는 시장의 짙은 회의감도 지울 수 없을 것입니다.
폭락한 국내 증시. 사진=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