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월드컵이 열리던 때, 지금처럼 거리 응원에 나갈 나이는 아니었지만, 대신 교실에 설치된 커다란 TV 앞에 친구들과 모여 경기를 봤습니다. 수업은 뒷전이었고, 골이 들어갈 때마다 교실이 떠나갈 듯 환호했죠. 벌써 20년이 훌쩍 넘은 이야기지만, 지금도 친구들을 만나면 그때 이야기가 빠지지 않습니다. 누가 어느 경기에서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어느 선생님이 응원을 허락해줬는지 같은 사소한 기억까지 생생합니다.
생각해보면 월드컵은 단순한 스포츠 행사가 아니었습니다. 같은 시간, 같은 장면을 보며 함께 웃고 울었던 공동의 기억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경기 결과보다 그 순간을 함께했던 사람들이 더 선명하게 남은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죠.
(사진=뉴시스)
2026 북중미 월드컵이 열리고 있지만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한국에서 열렸던 월드컵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 있습니다. 시차도 있고, 사회도 많이 변했습니다. 공동체보다 각자의 일상이 더 중요해진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예전만큼 월드컵 열기가 느껴지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예전에는 TV만 켜도 월드컵 이야기가 흘러나왔습니다. 온 국민이 같은 경기를 보고 같은 장면을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중계 채널도 제한적이고, TV 자체를 보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모바일로 하이라이트를 보거나 결과만 확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람도 변했고, 사는 방식도 변했습니다. 기술은 발전했고 콘텐츠는 넘쳐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함께 보고, 함께 기억할 수 있는 장면들은 오히려 줄어든 것은 아닐까요.
최근 보편적 시청권 논의가 이어지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힙니다. 중요한 스포츠 이벤트를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유는 단순히 시청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입니다. 같은 순간을 함께 경험하고 기억할 수 있는 사회적 자산을 지키기 위한 의미도 있습니다.
모두가 같은 것을 볼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훗날 "그때 기억나?"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무언가 정도는 남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