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치러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서울 송파구 12곳, 강남구 1곳, 광진구 1곳 등 14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일부 투표소에서는 투표가 일시 중단됐고, 잠실7동 제2투표소에서는 밤 10시까지 투표가 이어졌습니다. 선관위는 송파구의 경우 전체 유권자 수의 50% 규모로 투표용지를 인쇄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습니다.
투표용지 부족은 분명한 선거관리 실패입니다. 투표소에 도착한 유권자가 제때 투표하지 못했고, 일부가 발길을 돌렸다는 보도까지 나온 이상 선관위가 책임 있게 경위를 설명하고 재발 방지책을 내놓는 것은 당연합니다.
공직선거법은 투표 마감 시각에 투표소에서 투표하기 위해 대기 중인 선거인에게 번호표를 부여하고 투표하게 한 뒤 투표소를 닫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후 6시 전 투표소에 도착했는데 투표용지 부족이나 안내 부실로 번호표를 받지 못했거나, 장시간 대기 끝에 투표를 포기했다면 참정권 침해 논란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실제 피해자가 있다면 구제 절차와 책임 규명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를 곧바로 '부정선거'라고 단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사실은 투표용지 수요 예측 실패, 인쇄·배분 관리 부실, 현장 대응 미흡 등입니다. 투표함 조작, 개표 조작, 특정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한 조직적 의도, 특정 지역 유권자를 의도적으로 배제했다는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행정 실패와 선거범죄는 구분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일부 정치 세력이나 유튜브 채널, 온라인 커뮤니티는 이번 사태를 곧바로 음모론의 재료로 삼고 있습니다. 투표용지가 부족했다는 사실만으로 '선거를 도둑맞았다'거나 '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식의 주장을 확산시키는 것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불신 조장에 가깝습니다.
가짜뉴스와 선동의 가장 큰 문제는 책임 규명을 방해한다는 점입니다. 확인되지 않은 부정선거 프레임이 앞서면 이런 질문은 뒤로 밀리고, 정치적 분노만 남습니다. 선거 불신을 부추기는 방식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태도가 아닙니다. 선거 절차의 하자를 비판하는 것과 선거 전체를 부정하는 것은 다릅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부실이 곧 부정은 아닙니다. 부실은 조사하고 고치면 되지만, 근거 없는 부정선거론은 선거제도 전체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립니다. 선관위에는 필요한 책임을 묻되,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사실처럼 유포하는 정치적 선동에도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선거 결과만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선거 과정이 공정하고 예측 가능하다는 신뢰 위에서 유지됩니다. 그 신뢰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분노의 확산이 아니라 사실의 확인입니다.
4일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겪은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 앞에서 시민들이 '선거관리위원회 해체, 부정선거, 재선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