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기준금리 인하 국면에서도 대출금리를 올리고 신용 문턱까지 높이면서 서민들의 금융 접근성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습니다. 금융당국은 연일 "이자장사를 자제하라"고 주문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 공시에 따르면 자넌 4월 기준 국내 은행의 가계대출 평균 금리는 전년 동기 대비 일제히 상승했습니다. 대출을 받은 차주의 평균 신용점수 역시 높아졌습니다. 금리는 올라가고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줄어드는 이중 장벽이 형성된 것입니다.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우리은행입니다. 우리은행의 가계대출 평균 금리는 지난해 4월 4.19%에서 올해 4월 4.76%로 1년 새 0.57%p 상승했습니다. 신한은행도 같은 기간 4.40%에서 4.75%로 0.35%p 올랐습니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내내 기준금리 인하기라는 점을 강조했던 것을 고려하면 다소 역설적인 모습입니다.
은행들은 시장금리와 조달비용, 가계대출 총량 관리 등을 이유로 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이를 체감하기는 어렵습니다. 기준금리는 내린다고 하는데 정작 내가 빌리는 대출금에 따른 이자 금액은 더 비싸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대출 문턱도 높아졌다는 점입니다. 신용점수 문턱을 높여 선택적으로 고신용자 차주에게만 대출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NH농협은행의 경우 가계대출 차주의 평균 신용점수(KCB 기준)가 지난해 936점에서 올해 951점으로 15점 상승했습니다. 5대 은행 가운데 상승 폭이 가장 컸습니다. 신한은행은 928점에서 938점으로, KB국민은행은 939점에서 946점으로 각각 높아졌습니다.
은행들이 위험관리를 강화하면서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높은 차주 중심으로 대출을 내준 결과입니다. 건전성 관리라는 측면에서는 이해할 수 있는 선택입니다. 경기 둔화와 부동산 시장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은행 입장에서도 연체 위험을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행이 가장 안전한 고객에게만 돈을 빌려주는 구조가 강화될수록 금융의 본래 역할은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신용점수 950점 안팎의 차주라면 사실상 최우량 고객에 속합니다. 반면 중·저신용자나 사회초년생, 자영업자들은 은행 문턱을 넘기 어려워집니다.
결국 이들은 더 높은 금리를 부담해야 하는 2금융권이나 정책금융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커집니다.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생산적 금융과 포용금융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최근 정부와 금융당국은 은행권의 예대금리차(예금금리-대출금리) 확대와 과도한 이자수익을 잇달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은행들이 막대한 이익을 거두는 동안 실수요자들의 금융 부담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는 문제의식입니다. 실제로 주요 은행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역대급 실적 흐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은행도 억울할 수 있습니다. 가계대출 총량 규제와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 건전성 관리 요구를 동시에 받는 상황에서 위험이 낮은 고객 위주로 대출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규제는 강화하면서 포용금융도 확대하라는 주문이 모순적이라는 하소연도 나옵니다.
하지만 금융소비자가 돈을 빌리는 비용은 높아졌고, 돈을 빌릴 수 있는 자격은 더 까다로워졌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정부는 금리를 낮추라고 하고 은행은 건전성을 이유로 문턱을 높이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서 가장 큰 부담을 떠안는 사람들은 결국 평범한 대출 차주들입니다.
금융은 위험을 관리하는 산업이지만 동시에 필요한 곳에 자금을 공급하는 산업이기도 합니다. 안전한 고객에게만 돈이 흘러가는 구조가 굳어진다면 은행의 사회적 역할 역시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기준금리 인하 효과가 금융소비자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지 지금의 대출 문턱이 과도한 것은 아닌지 다시 점검할 시점입니다.
서울 시내 한 은행 영업점에 주택담보대출 홍보물이 게시돼 있는 모습.(사진=뉴시스)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