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정부 들어 금융권을 향한 이자장사 비판 수위가 한층 높아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실 정책실장에 이어 이재명 대통령, 금융감독원장까지 잇따라 은행권의 공공성과 포용금융 역할을 강조하고 나섰습니다.
은행들이 고신용자 중심 영업에만 몰두한 채 손쉬운 이자수익에 안주하고 있다는 문제의식도 공개적으로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정작 시장에서는 은행권 예대마진이 역대 최대 수준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가계대출을 강하게 틀어쥐는 사이 은행들은 대출금리를 높이고 예금금리는 낮게 유지하며 오히려 수익 기반을 더 단단히 다지고 있습니다.
최근 정부 메시지는 단순한 상생금융 주문 수준을 넘어섭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SNS를 통해 "왜 가장 여유 있는 사람은 가장 낮은 금리를 누리고 가장 절박한 사람은 가장 비싼 돈을 써야 하는가"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국무회의에서 "금융기관은 준공공기관"이라며 금융권의 공적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도 최근 "금융사가 손쉬운 이자장사에 매몰돼선 안 된다"고 공개 경고했습니다.
정부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은행들이 우량 차주 위주로만 대출을 늘리며 안정적인 이자수익에 안주하지 말고 중·저신용자와 생산적 분야로 자금을 공급하라는 것입니다. 금융권을 단순한 사기업이 아닌 공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산업으로 보고 있다는 점도 다시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흐르고 있습니다. 은행들은 여전히 고신용자 중심 대출 영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총량 규제를 강화한 상황에서 굳이 위험도가 높은 차주를 적극적으로 끌어안을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정된 총량 안에서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결국 우량 차주 위주로 대출을 내주는 편이 훨씬 유리합니다.
실제 대출금리는 계속 오르고 있습니다. 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5대 은행의 지난 3월 일반신용대출 평균금리는 5.028%로 전월보다 상승했습니다. 일부 은행은 한 달 새 0.3%p 넘게 금리를 올렸습니다. 마이너스통장 금리 역시 대부분 4% 후반~5%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반면 예금금리는 1년 넘게 2%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대출금리와 예금금리 격차는 계속 벌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결국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가 은행들의 예대마진 확대를 오히려 돕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관리를 이유로 대출 총량을 조이고 있습니다. 은행들은 총량을 맞추기 위해 금리를 높여 대출 문턱을 올립니다. 반면 신규 대출 자체를 공격적으로 늘릴 수 없는 만큼 예금금리를 굳이 높일 필요는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예대금리차는 확대됩니다.
실제 5대 은행의 가계 예대금리차는 지난 3월 평균 1.51%p까지 벌어졌습니다. 관련 공시가 시작된 2022년 이후 가장 큰 격차입니다. 은행권은 사상 최대 수준의 예대마진을 기반으로 올해 1분기에도 호실적을 이어갔습니다. 금융지주들은 경기 둔화와 내수 침체 속에서도 수조원대 이자이익을 거뒀습니다.
이 흐름은 윤석열정부 시절에도 같았습니다. 윤 전 대통령이 은행권의 공공성과 과도한 이자이익 문제를 지적한 뒤 금융당국 수장이 예대금리차 축소 압박에 나서는 흐름이 반복됐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가계대출 총량 규제와 금리 개입 속에서 은행권의 우량 차주 중심 영업과 예대마진 확대 현상만 더 강해졌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이번 정부 역시 비슷한 흐름을 되풀이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물론 은행권만 탓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습니다. 현재 금융당국 정책 방향 자체가 '대출을 줄이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은행 입장에서 총량 규제를 맞추면서 수익성까지 유지하려면 결국 금리를 올리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차주 위주로 대출을 취급할 수밖에 없습니다. 금융당국은 포용금융을 주문하지만 동시에 건전성 규제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은행 입장에서는 상반된 요구를 동시에 받는 셈입니다.
단순히 은행권을 향해 '이자장사 하지 말라'고 압박하는 것만으로는 구조가 바뀌기 어렵습니다. 총량 규제와 건전성 중심 정책이 유지되는 한 은행들은 계속 우량 차주 중심 영업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큽니다. 포용금융을 강화하겠다면 은행권이 중·저신용자 대출을 확대할 수 있는 제도적 유인과 리스크 분담 장치부터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부의 경고가 반복될수록 은행들의 예대마진만 더 두터워지는 역설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 앞 대출 안내문이 붙어있는 모습.(사진=뉴시스)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