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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츠 사태의 교훈
입력 : 2026-05-12 오전 9:51:07
국내 상장 리츠 시장이 자산 규모 100조원 시대를 연 게 무색하게, 초유의 한파가 들이닥쳤다. 벨기에 파이낸스타워에 투자했던 제이알글로벌리츠가 기초자산 가치 하락에 따른 LTV(담보인정비율) 위반과 이로 인한 캐시트랩(자금 유출 통제)에 걸리며 법원 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이는 단순히 해외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불황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한국 자본시장의 구조적 맹점을 드러낸 사건이다.
 
리츠는 부동산 간접투자를 위해 설계됐다. 법인세 면제라는 혜택(이중과세 방지)을 받는 대신, 배당가능이익의 90% 이상을 주주에게 의무적으로 지급해야 한다. 평상시에는 이 고배당 구조가 투자자를 끌어모으는 강력한 유인이지만, 사내유보금을 쌓을 수 없는 한계 탓에 자산 가치가 급락하거나 금리가 치솟을 때 꺼내 쓸 '비상금'이 전무해진다. 제이알글로벌리츠 역시 내부에 쌓아둔 현금이 있었다면 LTV 위반 시 원금을 조기 상환해 디폴트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제이알글로벌리츠의 붕괴를 두고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기업 밸류업 정책과 배당 확대 기조에 대한 경고장으로 해석하려 한다. 일반 상장사들이 리츠처럼 과도한 고배당에 치우칠 경우, 위기 시 방어력을 상실하고 혁신을 위한 R&D나 M&A 투자 동력을 잃어버린다는 논리다.
 
하지만 리츠 몰락을 핑계로 국내 증시의 배당 유도 정책을 제동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제이알글로벌리츠 사태의 근본 원인은 '90% 배당'에 있지 않다. 시장의 상투(고점)에서 해외 부동산을 덜컥 매입하고, 치명적인 재무 약정(캐시트랩) 발동 전까지 제대로 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한 운용사와 경영진의 무능에 있다. 일반 상장사는 자산을 굴려 임대료만 받는 리츠가 아닐뿐더러, 현금 유출이 우려된다면 '자사주 소각'과 같은 훨씬 유연하고 다양한 주주 환원 무기를 선택할 수도 있다.
 
그동안 한국 증시를 짓눌러온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저에는 사내유보금을 듬뿍 쌓아두고도 이를 주주에게 환원하는 데 극도로 인색했던 낡은 기업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막대한 잉여 현금을 쥐고서도 제대로 된 미래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거나 엉뚱한 곳에 투자해 온 경영진의 실패를 덮기 위해, "배당을 많이 하면 위기 때 위험하다"며 리츠 사태를 들이미는 것은 기만이다.
 
리츠 사태는 배당 확대가 기업을 망친다는 증거가 아니라, 무능한 자본 배치와 리스크 관리가 얼마나 뼈아픈 결과를 낳는지 보여주는 반면교사다. 상장사들은 이번 사태를 주주 환원 축소의 핑계로 삼을 것이 아니라, 자본 효율성을 높이고 주주와 소통을 상시화하는 진짜 밸류업 계기로 삼아야 한다.
 
  
제이알글로벌리츠가 매입했던 브뤼셀 파이낸스타워. 사진=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이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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