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노사 '춘투'가 시작됐습니다. 매년 반복되는 임금 협상처럼 보이지만 올해는 결이 다릅니다. 숫자 싸움을 넘어 금융산업의 틀 자체를 건드리는 요구들이 한꺼번에 쏟아졌기 때문입니다. 임금 8% 인상 요구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정년 연장, 임금피크제 폐지, 주 4.5일제 도입까지. 노조의 요구안은 전면 개편에 가깝습니다.
13일 금융노조는 ‘2026년 임단투 출정식’을 열고 산별 교섭의 출발을 알렸습니다. 출정식 직후 곧바로 상견례가 이어졌습니다.
이날 노조는 임금인상률 8.0%를 요구했는 데요. 이는 결코 낮지 않은 숫자입니다. 올해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훌쩍 웃돕니다. 저임금 직군에 대해선 인상률을 두 배로 적용하겠다는 요구도 담겼습니다. 임금 내부 격차까지 손보겠다는 의도입니다.
올해 협상의 진짜 무게추는 임금이 아니라 단체협약에 있습니다. 특히 정년과 임금체계, 노동시간이 핵심 축입니다. 노조는 정년을 65세로 연장하고 임금피크제는 폐지해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현재 금융권의 임금피크제는 정년을 보장하는 대신 일정 시점부터 임금을 깎는 구조인데요. 노조는 이 구조 자체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문제는 비용입니다. 정년을 늘리면서 임금 삭감 장치까지 없애면 인건비는 구조적으로 상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은행권은 이미 점포 축소와 디지털 전환으로 비용 효율화에 나선 상황입니다. 이런 흐름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요구입니다. 사용자 측이 쉽게 수용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노동시간 단축도 마찬가지입니다. 노조는 급여 삭감 없는 주 4.5일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주 52시간제가 자리 잡았다고 하지만 금융권의 업무 강도와 야근 문화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주장입니다. 여기에 출산·육아 지원 확대까지 포함됐습니다. 단순히 근로시간을 줄이는 문제가 아니라 일·가정 양립 구조를 재설계하자는 접근입니다.
결국 올해 교섭은 임금, 고용, 노동시간, 지배구조까지 모두 엮인 '패키지 협상'인 셈입니다. 어느 하나만 떼어내 타협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 가운데 상당수가 노사 합의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사안이라는 점입니다. 정년 연장과 임금체계 개편은 법과 제도의 영역이고 노동이사제 역시 정책 방향과 맞물려 있습니다. 협상 테이블 밖의 변수들이 많습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장기전을 예상하는 시각이 우세합니다. 임금 인상률은 조정 여지가 있더라도 정년과 임금체계 문제는 제로섬게임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한쪽이 얻으면 다른 쪽은 비용을 떠안아야 합니다. 접점을 찾기 쉽지 않은 구조입니다.
그래서 이번 협상은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금융권이 어떤 방식으로 노동과 비용, 그리고 사회적 책임의 균형을 잡아갈지 가늠할 수 있는 시험대가 될 전망입니다.
금융산업노동조합이 2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한도없는 ELS 과징금, 금융위는 기준없는 정책 책임져라‘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