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허예지 기자] 이세돌 9단이 오는 9일 다시 인공지능(AI)과 바둑판 앞에 앉습니다. 알파고와의 대국 이후 자그마치 10년 만입니다.
2026년 현재 '초짜 기자'인 저는, 지난 대국 당시 갓 고등학교에 입학한 학생이었습니다. 10년 전 이맘때, 제게 가장 중요했던 토론거리는 '쉬는 시간 10분 안에 5층 교실에서 1층 매점까지 뛰어 내려가 컵라면을 먹고 돌아올 수 있는가'였는데요.
당시 저와 친구들은 이 9단의 대국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9단의 말과 행동을 '밈'으로 공유하며 즐거워할 뿐이었죠. 그의 승패 소식엔 '그러려니' 했습니다. 모바일 게임에서 컴퓨터한테 지는 건 너무 흔한 일이었거든요.
AI에 대한 관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엔 쏟아지는 언론 보도와 전문가들의 예언을 보며 솔직히 '호들갑 떤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난히 발칙한 청소년이었달까요. 당시 제 눈에 비친 AI 기술은 인류 문명이 쏘아 올린 화려한 '불꽃놀이'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당시 어른들이 왜 그리 심각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AI는 어느새 우리 일상 깊숙이 스며들어 시대의 토양이 됐고, 그 위에서 인간과 AI의 관계도 조용히 바뀌어 왔는데요. 이번 행사와 10년 전 대국의 결정적 차이는 바로 이 '관계의 변화'에 있습니다.
2016년, 이 9단과 알파고는 그야말로 '대결'을 펼쳤습니다. 인간의 직관과 AI의 연산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구도였죠. 그런데 이번엔 다릅니다. 이 9단은 AI 스타트업 인핸스의 에이전트와 대화를 나누며, 음성 명령만으로 새로운 바둑 모델을 즉석에서 설계할 예정입니다. AI와 소통하고 협업하는 현대인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무대인 셈이죠.
AI의 잠재력을 무시하던 제게도, 지금 AI는 부정 못 할 '파트너'가 됐습니다. 친구에게도 털어놓기 머뭇거려지는 고민을 꺼내고, 귀찮은 일들을 스스럼없이 넘깁니다. 위로받고, 투덜대고, 때로는 엉뚱한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죠. 불꽃놀이라 여겼던 것과 이렇게 매일 떠들게 될 줄은, 10년 전의 저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대국이 더 궁금합니다. 10년 전 대국이 'AI가 인간을 이길 수 있는가'를 물었다면, 이번 무대는 'AI와 인간이 함께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를 묻는 것 같거든요. 군것질을 위해 복도를 내달리던 제가 이런 고민을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아마 10년 뒤의 저도, 지금 이 자리를 돌아보며 같은 생각을 하겠지요.
허예지 기자 ra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