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주거 시장이 전세 400조원 시대를 맞이한 가운데 그 거대한 자본의 흐름 속에서 정작 세입자들은 갈 곳을 잃고 헤매고 있습니다.
이재명정부가 추진하는 갭투자 차단 정책은 투기 세력을 근절하고 빚 위에 세운 허구적 공급 체계를 바로잡겠다는 측면에서 그 취지의 정당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정책의 옳고 그름을 떠나 전세 제도가 급격히 위축되는 전환기에 놓인 세입자들을 보호할 사회적 안전망이 전무하다는 점에 있습니다.
정부의 강력한 갭투자 규제는 시장에 즉각적인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집주인들은 전세를 놓기보다 월세로 전환하여 수익을 보전하려 하고 세입자들 역시 전세 사기와 깡통전세에 대한 공포로 인해 스스로 전세를 기피하며 월세 시장으로 유입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세의 월세화' 흐름은 갭투자 근절 정책과 맞물려 더욱 가속화되고 있으나,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주거비 상승의 고통은 오로지 서민의 몫으로 남았습니다.
특히 월세 시대로 내몰리는 이들의 대다수가 저소득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라는 사실은 우리 경제에 심각한 경고등을 키고 있습니다.
전세 보증금이라는 자산 형성의 사다리가 끊긴 자리에 고액의 월세 부담이 들어차면서 가계의 가처분 소득은 급감하고 있습니다. 주거비를 내고 남은 돈이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소비가 위축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곧 골목 상권의 매출 하락으로 이어집니다. 매출이 줄어든 자영업자가 고용을 포기하거나 폐업을 선택하게 되면 다시 저소득층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거대한 악순환의 굴레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결국 갭투자 근절이라는 대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투기를 막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전세가 사라지는 과도기에 저소득층이 주거 빈곤층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촘촘한 보완책이 병행돼야 합니다.
공공임대 주택의 획기적인 확충이나 월세 지원 제도 정비 없이 진행되는 규제는 자칫 서민들의 삶의 터전을 앗아가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습니다. 투기 세력을 잡기 위해 휘두른 칼날에 평범한 세입자들의 생존권이 다치지 않도록, 이제는 '전환기 주거 안전망'에 대한 정부의 책임 있는 응답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서울 중구 남산에서 서울시내 아파트가 보이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