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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전성시대
입력 : 2025-11-13 오후 2:23:22
이른바 '투자 전성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지난달 말 코스피(KOSPI)가 사상 처음으로 4000선을 돌파하면서 역대급 불장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서울 아파트값 매매 시가총액은 올해 꾸준히 오르다 지난달 최초로 1800조원을 넘어섰습니다. 주식과 부동산 모두 호황을 맞으며 사회 전반에서 '투자는 상식'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됐습니다. 
 
하지만 이런 불장 속에서도 여전히 시장 밖에 머물러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자본소득이 노동소득을 압도하는 현 상황에서, 사회초년생인 젊은 층은 오히려 취약층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시드머니가 없는 청년들에게 "돈이 돈을 번다"는 말은 남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필자도 최근 지인에게 "코스피 황금시대다. 너는 돈도 버는데 왜 투자를 안 하냐"는 말을 듣고 씁쓸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서울에 혼자 사는 1인 가구 청년이 벌 수 있는 돈이 한계가 있는데, 돈이 돈을 번다는 게 남 얘기 같다"며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아온 건 아닌가 생각까지 들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직장인들뿐만 아니라 취준생들은 더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시드머니(종잣돈)도 없고 시간도 없어 주식을 하기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주변의 취준생 지인들을 보더라도 또래 친구들이 몇천만 원씩 벌었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만 바보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합니다. 
 
이처럼 노동소득보다 투자소득이 훨씬 앞서가는 요즘,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곤 합니다. "과연 노동의 가치가 있긴 할까. 이렇게 치열하게 살 필요가 있을까." 
 
통계에서도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투자 여력 격차는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통계청·금융감독원·한국은행이 공동 발표한 '2024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소득 상위 20%(5분위)와 하위 20%(1분위) 간 처분가능소득 격차는 2023년 1만1680만원으로, 2019년(9882만원)보다 더 벌어졌습니다. 처분가능소득은 세금·사회보험료 등을 제외하고 가계가 자유롭게 소비하거나 저축할 수 있는 실질 소득을 말합니다. 
 
저소득층은 여윳돈이 부족할 뿐 아니라 부채 부담도 커지고 있습니다. 신한은행의 '2024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소득 하위 20%의 부채보유율은 전년 대비 4.4%포인트 늘어난 48.4%로, 전 구간 가운데 유일하게 증가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투자 전성시대가 오히려 부의 불평등과 사회 양극화를 가속화한다고 진단합니다. 처분가능소득이 많을수록 주식·부동산·예금 등 자산투자에 나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상위층과 하위층의 소득 격차가 곧 투자 여력의 격차로 이어지고, 그 결과 양극화가 심화한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사회는 자본의 가치가 노동의 가치를 압도하고 있어, 청년 세대는 돈이 없으면 존재의 좌절감을 느낀다며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도 주장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빚투'나 '영끌 투자' 같은 위험한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시장 신뢰 회복과 정보 비대칭 해소를 위해서라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투자 전성시대'는 분명 부를 쌓을 기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회가 모두에게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청년들은 '투자하지 못하는 죄책감'까지 짊어진 채 살아갑니다. 노동소득에 따른 건강한 자산 운용으로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이제 완전히 끝이 난 걸까요. 사회초년생들이 부디 투자 전성시대 속에서 너무 큰 좌절감에 빠지지 않길 바랍니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
이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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