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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의 역설
입력 : 2025-11-05 오후 5:59:46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마련된 중대재해처벌법이 현장에서는 때로 보호막이 아닌 족쇄가 되고 있습니다. 
 
(이미지=챗GPT)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 근황을 물었습니다. 많은 일이 있었다고 입을 뗀 지인은 올 봄에 남편이 쓰러졌다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남편은 심장마비로 쓰러져 심폐소생술을 한 뒤 중환자실에 3주간 입원했다고 했습니다. 의사들은 깨어나지 않는 남편을 보고 지인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3주 뒤 극적으로 의식을 되찾은 남편은 심장 제세동기 삽입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는 겨우 30대입니다. 갓 태어난 자녀가 있고 한창 일을 해야 할 시기입니다. 수술 수 그는 회사로 복귀했습니다. 그러나 회사에서 또 다른 암초를 만났습니다. 회사에서는 수술 사실을 알고 난 뒤 그의 업무 시간을 제한했습니다. 기본 근무시간 외에 야근 등 추가근무를 불허한 것입니다. 물론 건강을 생각하면 잔업 없이 출퇴근하는 것이 맞지만 일을 하다보면 일이 몰리게 돼 잔업을 해야 하는 상황도 벌어지게 마련인데요. 회사에서 이를 원천적으로 막으면서 손발이 묶이게 된 것입니다. 
 
듣던 저도 걱정이 앞섰습니다. 당장 이렇게 되면 업무에서 배제되기 십상입니다. 한창 승진을 해야 할 시기에 이런 식으로 업무에 제약을 받으면 밀리게 마련입니다. 그의 건강이 가장 중요하지만 앞길이 구만리인데다 식솔도 있는 상황이어서 어느 것하나 편치 않은 상황이 된 것입니다. 불이익 아닌 불이익을 받게 된 셈이죠. 
 
지인은 제게 남편의 이직도 고려해 봤으나 그마저도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신체검사를 하면 제세동기를 부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비슷한 일을 겪을 수도 있을 것 같다며 고민했습니다. 답답한 이 부부는 노무사도 찾아갔는데요. 돌아온 답은 회사에서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노동자 안전사고가 회사의 치명적인 형사 처벌로 이어질 수 있기에 이러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불러온 역풍입니다. 
 
이번 일로 지인의 시아버지가 눈물을 흘리셨다고 합니다. 섣부르게 아들의 몸에 제세동기를 삽입했다며 자신 탓을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로선 최선이었을 텐데 말이죠. 이번 정부는 산업 안전사고에 유난히 민감합니다.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대통령이 직접 나서 대책을 요구하고 이내 회사에서는 3교대를 2교대로 만드는 등 수십 년간 해내지 못했던 일들을 단숨에 해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필요하지만, 강력한 법적 조치로 인한 부작용이 때로는 노동자를 향할 수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변소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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