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희 기자] 올해 국정감사에서 농협중앙회에 대한 질타가 예상보다 잠잠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금융사고, 횡령, 금품 수수 의혹 등 각종 문제가 적지 않았음에도, 국감장의 분위기는 그 심각성만큼 뜨겁지 않았습니다.
'농해수위 의원들이 농협 눈치를 본다'는 지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이번 국감을 계기로 다시 확인된 현실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문제의 핵심은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정치와 표심 구조에 깊게 뿌리내려 있습니다.
농협은 전국적으로 약 200만명의 조합원을 기반으로 하는 국내 최대 협동조합 조직입니다. 지역 단위조합의 조합장들은 지역 경제와 생활 조직을 실질적으로 좌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농해수위 의원들 상당수가 농촌 지역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만큼, 조합장과 조합원들의 여론은 사실상 '지역 표심'과 직결됩니다. 농협과 의원들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이유입니다.
이 때문에 국회에서 농협 개혁 관련 법안이 논의될 때마다 조합장들의 반발이 변수로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비상임조합장 연임 제한, 농축협과 농협중앙회의 권한 조정 문제 등입니다. 개혁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분명함에도, 실제 법안 처리는 지지부진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지역구를 생각 안 할 수 있겠느냐"는 의원들의 말은 현실을 솔직하게 보여줍니다. 정치와 제도의 충돌 속에서 개혁 논의는 매번 힘을 잃습니다.
실제 농해수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어기구 국민의힘 의원은 충남 당진시를 지역구로 하고 있습니다. 간사인 김선교 의원은 경기 여주시·양평군, 더불어민주당 간사 윤준병 의원은 전북 정읍시·고창군을 지역구로 둡니다. 모두 농업·농촌 기반이 지역 경제와 사회 구조에서 큰 역할을 차지하는 지역입니다. 이러한 지역적 특성은 의원들에게 '농협과의 관계를 신중히 가져야 한다'는 현실적 압력으로 작동합니다.
그렇다고 농해수위가 무기력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최근 몇 년간 국감에서는 농협 내부통제 부실, 인사 투명성 부족, 경제지주·금융지주 간 역할 불균형, 지역 농축협과 중앙회 간 권한·책임 구조 개선 필요 등이 꾸준히 지적되어 왔습니다. 일부 의원들은 "농협은 더 이상 성역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며 개혁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농협이 공공성과 협동조합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는 요구는 정치권 안팎에서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정치권의 발언과 현실 간의 간극입니다. 국감장에서의 질타는 강할 수 있으나, 이후 국회 법안 처리 문턱에서는 다시 표심의 셈법이 작동합니다. 개혁 의지와 정치적 부담이 충돌하는 자리에서 농협 개혁은 번번이 속도를 잃었습니다. 개혁은 필요하지만, 부담은 크다는 인식이 결국 현상 유지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농협 역시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조합원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라는 본연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내부 견제 장치 강화, 투명한 의사결정, 경영 구조 개선 등 스스로 변화하는 노력을 보여야 합니다. 조직 규모와 영향력이 큰 만큼 책임 역시 작지 않습니다.
국회는 감시자입니다. 농협은 공공성을 띤 경제·금융 협동조합입니다. 서로의 역할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종종 정치적 계산과 지역 이해가 그 경계를 흐리고 있습니다. 눈치 보는 국감이 아니라, 바꾸는 국감이 되었으면 합니다.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해양수산법안심사소위에서 국회의원들이 앉아 있다. (사진=뉴시스)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