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성은·이효진 기자]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부동산 문제로 곤혹을 치르고 있습니다. 최근 규제에 중점을 둔 '10·15 부동산 대책' 발표에 시장 반응은 차가운데요. 여기에 이상경 국토교통부 1차관의 실언과 갭투자 의혹, 여권 인사들의 부동산 보유 내역이 논란이 되며 여론은 싸늘하게 식었습니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비판을 의식한 여권에선 이 차관에 대한 첫 사퇴 요구까지 터져 나왔습니다.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악몽'이 되살아나는 가운데 내년 지방선거의 성패가 '부동산'으로 점철되고 있습니다.
이상경 국토교통부 1차관이 23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국토부 유튜브 생방송 갈무리)
(그래픽=뉴스토마토)
"나중에 집 사라"던 이상경 '사과'…여당서도 '실언'
23일 이 차관이 국토부 유튜브 채널 생중계에 출연해 "부동산 정책을 담당하는 국토부 고위 공직자로서 국민 여러분 마음에 상처를 드린 점을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라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지금 돈 모아 나중에 집 사면 된다"라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지 나흘 만입니다.
이 차관은 지난 19일 유튜브 '부읽남TV'에 출연해 "정부 정책을 통해 집값이 안정되면 그때 사면 된다"라고 발언해 대중의 뭇매를 맞았습니다. 무주택자의 불안을 헤아리지 못한 경솔한 발언이라는 지적입니다. 이 차관은 특히 이재명 대통령의 '부동산 책사'로 불리며 지난 대선 캠프에서 부동산 정책을 총괄한 인물이기에 여론의 화살이 쏟아졌습니다.
'갭투자(전세 낀 매매)' 의혹이 기름에 불을 붙였습니다. 이 차관 배우자는 지난해 7월 성남시 백현동의 시세 33억5000만원 아파트를 사들인 뒤 14억8000만원의 전세 계약을 맺은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국토부는 실거주 목적으로 아파트를 매입한 것이라며 해명에 나섰지만 성난 민심은 쉽게 진화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이 차관은 "제 배우자가 실거주를 위해 아파트를 구입했으나 국민 여러분의 눈높이에는 한참 못 미쳤다는 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재차 사과 말씀을 올리겠다"라며 "앞으로 부동산정책 담당자로서 주택시장이 조기에 안정화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습니다.
일각에서 제기된 '사퇴'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이날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국민의 말초 신경을, 아주 비위를 상하게 그따위 소리를 하면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것이 좋다"라며 "김윤덕 국토부 장관도 해임(요구안)을 김민석 국무총리한테 내는 것이 좋고 대통령은 무조건 책임을 물어서 내보내야 한다"라고 촉구했습니다.
당은 이 차관 사퇴 요구에는 선을 긋는 모습입니다. 문금주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국정감사대책회의 이후 기자들과 만나 "박 의원의 발언은 개인 의견이며, 당 차원에서 별도 논의된 바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여권의 잇단 부동산 '내로남불' 논란을 의식한 태도로 풀이됩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서울 강남구 개포동 아파트 갭 투자 의혹을 시작으로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 서울 서초구 서초동 아파트 딱지(재건축 입주권) 구입 논란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 서울 송파구 신천동 아파트 갭투자 의혹 등이 불거지자 야권에서는 "대출은 투기라고 훈계하면서 정작 본인들은 수십억원대의 부동산을 보유하는 노골적인 위선"이라며 공세를 퍼붓고 있습니다.
이 차관의 사과에도 여권의 '실언'은 계속되는 모습입니다. 복기왕 민주당 의원은 이날 <YTN 라디오> '김영수의 더 인터뷰'에 출연해 "15억은 서민 아파트"라고 말했습니다. 10·15 부동산 대책에 대한 야당의 '사다리 걷어차기' 비판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지만, 비판 여론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복 의원은 이날 오후 "급하게 단어 선택을 한 것이 국민에게 걱정을 끼쳤다"라며 "이 자리 들어서 앞으로 좀 더 정확한 용어 선택을 위해서 노력하겠다"라고 사과의 뜻을 밝혔습니다.
서울 중구 남산에서 본 서울 시내 아파트 모습. (사진=뉴시스)
집권 5개월에 '문재인정부 시즌 2' 평가…지방선거도 타격
'부동산 실패'는 민주당에 뼈아픈 기억입니다. 박근혜정부가 비선 실세 의혹으로 탄핵되면서 민주당은 정권 교체에 성공했으나, 부동산 문제가 문재인정부 임기 내내 발목을 잡았습니다.
당시 세계 각국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시중에 돈을 풀었고, 이에 힘입어 부동산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했는데요. 문재인정부는 신속한 주택공급 정책보다 대출과 세제 규제를 조이는 방식에 집중하면서 주택 시장의 열기를 끌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습니다.
결국 천정부지로 솟는 집값에 여론은 등을 돌렸고, 이는 '선거 참패'로 이어졌습니다. 지난 2021년 4월7일 치러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은 요충지를 국민의힘에 빼앗겼습니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57.50%)과 박형준 부산시장(62.67%)은 높은 득표율로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압승을 거뒀습니다.
다음 해 대통령 선거에선 국민의힘 소속의 정치 신인인 윤석열씨가 득표율 0.73%포인트 차이로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이겼습니다. '부동산 선거'에 초점을 맞춘 국민의힘이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실책을 때리며 대대적인 '규제 완화' 공약을 폈던 것이 적중한 결과였습니다.
이렇다 보니 이재명정부의 이번 규제책이 '문재인정부 시즌 2' 평가를 받는 것에 대해 여권의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내년 지선 전 집값 안정화가 필수적인데, 규제만 하자니 반발이 심하고 주택공급 방안은 마땅치 않기 때문입니다.
현재 당정은 집값을 누르기 위해 세제 강화라는 극약 처방을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 다만 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세금으로 집값 잡지 않겠다"고 공언한 데다 여권 인사들의 부동산 보유·거래 내역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집권 5개월 차에 부동산 역풍 조짐을 보이는 실정입니다.
그 단초가 된 이 차관의 실언과 사과, 10·15 부동산 대책과 관련해 대통령실은 말을 아꼈습니다. 김남준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 브리핑에서 이 차관과 부동산 대책 관련 질문에 "국민 목소리에 신중히, 엄중히 귀 기울이고 있다"고 짧게 답했습니다.
김성은 기자 kse5865@etomato.com
이효진 기자 dawnj789@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