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희 기자] 10억원 미만 금융사고가 금융감독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올해 들어서만 5대 시중은행에서 발생한 10억원 미만 금융사고가 40건, 피해 금액은 88억5000만원에 달했습니다. 현행 은행법상 1억원 이상 사고는 금융감독원에 보고해야 하지만 공시 의무는 10억원 이상으로 한정돼 있습니다. 결국 사고가 보고돼도 외부에 드러나지 않고 '조용히' 종결되는 구조입니다.
은행별로 보면 하나·신한·우리은행이 각각 11건으로 가장 많고 국민은행 3건, 농협은행 4건이 뒤를 이었습니다. 사고 금액 기준으로는 하나은행이 35억9200만원으로 가장 컸습니다. 전체 피해액의 40%를 넘는 규모입니다. 유형을 보면 사기 사건이 전체의 60%가량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습니다. 배임·횡령 등 내부 직원에 의한 사고도 적지 않습니다. 소액 사고라 해도 반복적인 패턴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단순한 일탈로 보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이 같은 사고들이 사실상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10억원 미만 금융사고는 공시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은행이 자체 종결하거나 내부 징계로 끝내면 외부 감독기관이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금감원이 분기별 정기보고서를 통해 건수만 파악할 뿐 사고 유형이나 원인, 재발 방지 조치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감독 제도가 보고 중심에 머물러 있는 사이 소규모 금융사고는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은행 내부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위기감이 엇갈립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소액 사고는 대부분 자체 징계로 마무리된다"고 했습니다. 다른 관계자는 "내부통제 시스템이 고도화되면서 어쩔 수 없이 과거보다 사고가 더 많이 포착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두 의견 모두 공통적으로 드러내는 사실은 하나입니다. 소형 금융사고에 대한 경각심이 여전히 느슨하다는 점입니다. 금융사고의 규모가 아니라 빈도가 문제인데 이를 감시하고 분석하는 제도적 장치가 부재합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완벽한 통제'는 어렵다는 현실론도 종종 등장합니다. 그러나 은행이 관리하는 자산 규모를 생각하면 단순히 사람의 일로 치부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닙니다. 작은 사고라도 반복되면 그 리스크는 제도적 취약점으로 전이됩니다. 내부통제가 단순히 사고 후의 징계 절차가 아니라 사고의 가능성을 조기에 식별하고 대응하는 시스템으로 작동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금융당국도 내부통제 강화 기조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올해 1월 도입된 '책무구조도' 제도는 금융사고 발생 시 최종 책임자를 사전에 특정해 책임을 묻는 장치입니다. 경영진의 보수를 환수하거나 사고 은행에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처벌 강화를 넘어 내부통제를 경영의 핵심 리스크 관리 영역으로 격상시키겠다는 신호입니다.
하지만 제도가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큰 사고보다 작은 사고를 더 민감하게 바라보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대형 사고는 드러나기 마련이지만 작은 사고는 은행의 조직문화와 통제 시스템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소액 사고의 반복은 곧 통제의 허점을 의미합니다. '10억원 미만'이라는 숫자가 경각심을 무디게 해서는 안 됩니다. 작은 금융사고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은행 내부에서 횡령 등 금융사고가 이뤄지는 것을 인공지능(AI) 이미지로 제작한 모습. (사진=챗GPT)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