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희 기자]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가 막이 올랐습니다. 매년 이맘때쯤 여의도는 증인과 참고인을 부르느라 부산한데, 올해는 이상하리만큼 조용합니다. 일반 증인석이 비어 있습니다. 금융권을 책임지는 수장들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올해도 금융권에서는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은행권의 가산금리 논란, 잇따른 고객 정보 유출, 사회공헌 활동의 실효성 부족 등은 모두 민생과 맞닿은 문제입니다. 하지만 정무위가 지난달 29일 의결한 증인 명단 어디에도 4대 금융지주 회장이나 주요 은행장 이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홈플러스, 쿠팡, KT, CJ올리브영, SK그룹 같은 기업들이 명단을 채웠습니다. 정작 국민의 돈을 굴리고, 금리를 정하는 금융권 수장들은 '국감 무풍지대'에 서 있는 것입니다.
국회의원들도 일반 증인 명단을 의결하는 과정에서 "은행장들은 매번 빠진다"며 "도대체 어디 하늘 위에 있는 사람들이냐"고 성토했습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비판은 쏟아졌습니다. 금융지주 회장들을 증인으로 신청했지만 여야 간사 협의 과정에서 빠졌다는 이유가 전부였습니다. 이유를 물어도 답은 모호했습니다. 한 국회의원은 "매번 출장 간다고 하지만 회의가 어디서 열리는지조차 답하지 못한다"며 "국감을 우습게 아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습니다.
사실상 면죄부 국감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정무위 국감은 금융소비자 피해, 금리, 사회적 책임 등 국민 생활과 가장 밀접한 현안을 다룹니다. 하지만 정작 답을 들어야 할 사람들은 빠지고, 책임이 없는 참고인들만 줄줄이 출석하는 풍경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도 은행장들은 증인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올해는 금융지주 회장들까지 빠지며 은행권 무풍지대라는 말이 공공연해졌습니다.
물론 정치권 사정도 있습니다. 여야가 증인 명단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기업인 출석은 언제나 민감한 사안입니다. 국감이 본래의 취지인 감시와 견제보다 '정치적 공방'의 장으로 변질되면서, 기업인 소환이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금융권은 조금 다릅니다. 은행은 단순한 민간기업이 아닙니다. 예금과 대출, 금리정책을 통해 가계경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반 공공적인 성격의 기관입니다.
이번 국감에서 정무위는 신협, 새마을금고, 메리츠금융 부회장 정도만 증인으로 세웠습니다. 하지만 주요 시중은행과 금융지주 회장들의 증인 신청은 기각되면서 사실상 은행권 핵심 현안인 가산금리, 사회공헌, 내부통제 문제를 따질 기회는 사라졌습니다. 금융당국의 감시가 아무리 강화돼도, 국회에서의 검증이 빠지면 은행의 이자장사 행태와 높은 대출금리 등을 바로잡는 정책이 제대로 시행되기는 어렵습니다.
아직 종합감사에서 추가 증인 채택 가능성을 열려 있긴 합니다. 윤한홍 정무위원장도 "간사들이 협의하면 국감 중이라도 의결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지난해에도 막판 여야 협상으로 증권사 CEO들이 추가로 불려 나온 전례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막판 소환이 실질적인 책임 규명으로 이어진 적은 많지 않습니다.
은행장들이 증인석에 서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비판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의 입으로 직접 설명하고, 책임을 확인해야 제도 개선의 방향이 잡히기 때문입니다. 금융소비자 피해, 가산금리 불투명성, 사회공헌 부실 논란 같은 문제들은 모두 구조적 원인과 연결돼 있습니다. 국감은 그 구조를 드러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식 통로입니다.
증인 없는 국감은 결국 책임 없는 국감입니다. 국회가 감시자의 역할을 놓친다면, 국감은 더 이상 감사가 아니라 의례적인 회의에 불과합니다. 이번 종감에서라도 금융권 수장이 증인석에 서 책임 있는 답변을 하길 기대해봅니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 모습. (사진=뉴시스)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